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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앞에, 어른 편의 위해 외치는 ‘노’는 NO!

입력 2025.05.03 12:00

  • 정유라
[언어의 업데이트]약자 앞에, 어른 편의 위해 외치는 ‘노’는 NO!

우리 집엔 어린이가 산다. 고릴라는 표정을 알 수 없어 무서워하고 경찰은 멋있어서 좋아하는 그 어린이는 아직 모르는 단어가 많다. 그는 아직 우정과 배려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신 그 어린이는 봄비에 꽃잎이 모두 씻겨 나간 꽃나무를 위로하는 법을 안다. “꽃잎이 다 떨어져서 슬펐을 텐데 내가 바닥에 있는 꽃을 주워서 붙여주면 나무가 따뜻하겠지?” 그 애는 사랑하는 인형과 의리를 지키는 법도 안다. “소방 대피 훈련 때 우리 인형도 대피했지요? 혼자서 남겨지면 위험한데…” 나는 꽃을 잃은 나무에 꽃잎을 붙여주는 마음과 소방 대피 훈련에서 인형 친구도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보다 더 유려하게 우정과 배려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훨씬 많은 단어를 머릿속에 넣고 살아가는 어른들보다 더 생생한 언어가 그들의 몸과 마음에서 피어나고 있다.

우리 집엔 어른도 산다. 그 어른은 너무 많은 말을 알고 있어서 어린이에게 그 뜻을 설명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아이에게 ‘약속’과 ‘규칙’의 뜻을 정확히 알려주면 더 잘 자랄 거라 믿는다.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아이로 키워야 밖에서 욕먹지 않고 수월하게 외출할 수 있겠지. 거리의 신호들이 가리키고 있는 뜻과, 지키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 약속들을 열심히 가르쳐보지만 정작 더 자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변호다. 아이는 묻는다. “신호등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되는데 저 차는 왜 슝 가?”, “나무가 아야 할 텐데 왜 저 사람은 꽃을 꺾어요?”, “아이씨는 나쁜 말인데 왜 저 형아는 아이씨라고 해요?” 난처와 부끄러움 속에서 그럴듯한 설명을 찾아보지만 결국 아이 말이 다 맞다. 어린이와 함께 사는 어른은 깨닫는다. 어느덧 배움보다 체념이 더 익숙해져버린 어른은 너무 많이 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너무 많이 알아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바른 어른이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리 없는 어른들은 어린이가 ‘말 잘 듣는 바른 아이’이거나 화면 속에서 귀여움을 전시하는 순수한 존재이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육아와 아기 콘텐츠로 힐링을 하는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 필요한 인내와 포용은 보이질 않는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는 국민의 70%가 ‘노키즈존’에 찬성한다 말한다. 보호자의 과잉보호도 문제지만 어린이가 만드는 소란을 이해할 사회적 여유도 줄어든 게 사실이다. 종종 무책임한 보육 방식이 갈등을 키우지만 과연 그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 ‘노키즈’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선행학습이 대세라지만 차별과 선별까지 선행할 필요는 없다. 약자 앞에 ‘노’를 붙이는 게 얼마나 망측한지 모르는 것이 어른이라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이가 점점 줄어드는 이 시대에, 누군가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면 그건 어른 쪽이다. 아직 체념보다 배움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어린이들은 본능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부단히도 노력한다. 갈등이 생기면 회피하기보다 아름다운 해결 방식을 고민한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노!’라고 말하는 대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엔 꼬옥 포옹을 하고 푼다. 몇번 따라 해봤는데 진짜 신기하게도 갈등이 스르륵 풀린다. 체념하지 않고 기어코 ‘사이좋게’ 지내자고 약속하는 이 몸의 언어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어왔다. 더 늦기 전에 어린이들에게 그들만 아는 흉터 없이 투명한 언어를 배우고 싶다.

■정유라

[언어의 업데이트]약자 앞에, 어른 편의 위해 외치는 ‘노’는 NO!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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