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잡히고 거칠어진 투박한 엄마의 손에서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났다. 어린 시절 내가 아플 때마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라며 배를 쓰다듬어 주던 그 손이다. 연례행사처럼 띄엄띄엄 찾는 고향 집 밥상에는 변함없이 엄마의 손맛이 가득했다. 짙은 주름과 거친 손마디에도 엄마의 손맛은 오히려 더 깊고 진하다.
엄마는 손이 참 작고 예뻤다. 그런 손을 보며 사람들은 ‘손이 크고 빠르다’며 음식을 맛깔스럽게 준비하는 엄마의 빠른 손놀림에 놀라곤 했다. 예로부터 우리는 손을 통해 다양한 감정과 의미를 표현해 왔다. 음식을 푸짐하고 맛나게 만드는 솜씨를 가리켜 ‘손이 크다’고 말하고, 일을 능숙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에게 ‘손이 빠르다’는 칭찬을 건넨다. 손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능력과 솜씨, 심지어 마음까지 담아내는 특별한 단어다.
최근 뛰어난 손재주나 능력을 가진 사람을 ‘금손’이라고 부르고, 반대로 서툰 사람을 ‘똥손’이라고 일컫는 표현이 나와 흥미롭다. 오랜 시간 다양한 의미를 담아 사용되던 손에 대한 표현이 이제는 ‘금손’ ‘똥손’이라는 간결한 한마디로 축약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재미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담겨온 ‘손’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요즘 ‘금손’은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요리, 그림, 게임, 공예, 수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힘차게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일상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면서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온 ‘약손’ ‘손맛’ ‘손재주’ 같은 정겨운 단어들을 뒤로 밀어내는 듯하다. 마치 널리 쓰이는 만큼 이제는 국어사전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화려한 ‘금손’들의 솜씨를 보더라도, 문득 떠오르는 것은 투박하고 거친 엄마의 손이다. 어린 시절 아픈 배를 쓰다듬던 따뜻한 약손, 변함없는 손맛으로 맛있는 밥을 차려주던 그 손은 어떤 ‘금손’과도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준다. 세월의 거친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엄마의 손은 영원한 ‘약손’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금손’은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만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