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또 무슨 난리냐 싶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고 있다. 그중에는 고등법원 파기환송심과 대법원 재상고심 일정도 포함된다. 심지어 국회가 새로 탄핵이나 관련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 현 대통령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일까 따져보는 이도 있다. 나랏일을 함께 걱정하는 게 시민 된 도리라지만, 시민들이 사법 일정과 함께 헌법기관 간 권한 다툼까지 검토하는 이 현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시민이 이렇게 극단적 정신 상태로 내몰리기까지 사법부가 기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법적 판단의 불안정성이 문제다. 정치적으로 중요 사건일수록 판결을 예측하기 어렵다. 진보와 보수가 각자 원하지 않는 판결을 받아드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판결의 방향 자체가 오리무중이라면, 심지어 오랜 법조 경력을 가진 시민도 그렇다고 개탄할 지경이라면 심각하다. 이 정도 법적 불안정성은 어떤 근본적 결함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내란 정국에서만 지귀연 판사의 판결을 합쳐 제대로 투 스트라이크다. 시민은 이제 사법 불신을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사법부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향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개정하거나 사법부 개혁을 검토하기 위해서라도 심사숙고할 문제다. 바로 이 땅의 억압적인 발언 문화를 어찌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자고 이렇게 동료 시민의 발언 내용을 문제 삼아 처벌하자고 열을 내는 것일까. 그것도 형법과 공직선거법에 자리 잡은 모호하기 짝이 없는 발언규제 조항들을 들이대며 말이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총선이나 지자체장 선거가 끝나면 일제히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민활한 검찰의 지휘로 시작해서, 예측하기 어려운 판결로 끝장나고야 마는 진실게임이다. 선거에서 이겼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상대 후보의 발언 내용을 문제 삼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를 이유로 처벌을 요구한다. 선거 과정 중에 벌어진 정치 공방전을 본 유권자가 이미 투표를 통해 정치적 심판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바란다. 다른 사례를 들 것도 없다. 2022년 대선에서 유권자가 내린 선택으로 낙선한 후보는 정계 퇴출이 걸린 비극적인 진실게임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억압적 발언 문화가 초래하는 비극성으로 말하자면 언론 쪽도 만만치 않다. 뉴스타파는 권력 비리를 고발하는 임무를 자임하는 탐사보도 언론이다. 뉴스타파가 아니라도 한국 언론은 수시로 보도 대상이 된 권력자로부터 소송에 시달린다. 악명 높은 한국식 명예훼손법 때문에 언론은 심지어 진실을 보도했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며 보도해야 한다. 법원은 대체로 언론 자유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명예훼손 소송에 시달려온 뉴스타파가 이진숙 방통위원장 등 정치인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한다. 비극은 이렇게 계속된다.
요컨대 이 나라는 정치 캠페인이나 후보 토론회 발언의 진실성을 일일이 따져 처벌하는 곳이다. 언론이 공직자 비리를 고발했다고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당할 수도 있는 나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도 동료 시민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말 한번 잘못하면 패가망신을 시켜도 좋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각자 남의 발언을 억압하기 위해 형사고발을 남발하는 나라에서 결국 누가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가. 고발장을 받아 기소를 결정하는 검찰이다. 애매한 법문을 이용해 예측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법원이다. 그리고 이 두 기관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권력자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