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임기 단축과 개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임 즉시 개헌을 추진하고 임기 5년 중 3년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현행 헌법상 임기 단축은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마음이 바뀌어서 사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냥 계속해도 된다. 사임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도 임기 단축은 핵심이 될 수 없다.
둘째, 대통령 중심의 개헌 추진은 이미 실패한 방법이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야당의 반대로 좌초됐다. 그 경험을 돌아보면, 개헌의 성사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설 것이 아니라 국회가 주체가 되고 국민이 참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방법론도 적절하지 못하다.
셋째, 3년 동안은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현재의 국가 시스템이 3년간 유지돼도 괜찮을까. 누적된 문제와 갈등을 보면, 이대로 대한민국이 3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변화는 필요할 때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3년이 짧은 시간도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그가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데에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넷째, 개헌의 성사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개헌이 논의된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그러나 국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찬성을 얻기는 어려웠다. 국민투표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칠레는 최근 개헌 국민투표를 2차례 실시했지만, 두 번 모두 반대투표가 더 많이 나오는 바람에 개헌이 좌절됐다. 따라서 ‘개헌을 하자’는 당위적인 얘기만 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개헌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모아내고 정치권의 합의를 촉진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물론 개헌은 필요하다. 그래서 대선 시기에 개헌에 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얘기되는 ‘임기 단축’ 중심의 개헌 논의는 적절하지 못하다. 오히려 차기 대통령 ‘임기 내 분권’ 개헌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차기 대통령 임기 초반부에 분권형 개헌이 성사되도록 하고, 임기의 중·후반부는 분권형 국가 시스템 내에서 국정운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개헌의 내용 중에 대통령의 임기나 중임 여부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다면, 그 조항만 그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부칙조항을 만들면 된다. 나머지 개헌 내용은 즉시 시행해도 관계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개헌 일정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1차 개헌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헌과 맞물려 있는 선거제도 개혁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이를 확실하게 보장하려면, ‘개헌 및 정치제도 개혁의 일정 및 절차에 관한 법률’(가칭)을 대선을 전후해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
어차피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일정이다.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하자는 일정과 절차에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년 지방선거 때 할 1차 개헌은 정치권에서 합의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끼리만 합의하는 개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범국민적인 개헌 및 정치개혁 추진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여야와 시민사회, 학계를 아우르는 범국민 추진기구가 구성돼 지역도 순회하고 쟁점에 관한 토론도 주관하면서 국민 의견을 수렴해 개헌안 초안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 방안도 같이 만들면 된다.
올해 말까지 범국민 추진기구가 한시적으로 이런 작업을 해 초안을 국회로 넘기자는 것이다. 그러면 국회가 더 논의하고 합의해 개헌안을 발의하고, 선거제도 개혁 등 정치개혁 방안도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다.
보다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권력 구조, 지방분권과 수도권 일극 집중 해소, 국민 참여 확대, 기본권 강화, 사법부 등의 독립성 강화 등이 개헌의 논의 주제가 될 것이다. 물론 한꺼번에 모든 내용을 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 성사되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헌법을 가질 수 있다. 차기 대통령 임기 내에 일정 정도 분권화된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래야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제는 ‘임기 내 분권’ 개헌을 현실로 만들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