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일 이른바 ‘해방의 날’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강한 조정을 겪었다. ‘미국 예외주의’라는 별칭까지 얻으면서 다른 국가 대비 압도적인 성과를 보였던 미국 금융시장 역시 이런 혼란의 파고에서 예외는 아니었는데, 기축통화국 미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주식·채권·통화(달러)가 모두 약세를 보이는 ‘트리플 약세’ 현상까지 나타났다.
위험자산인 주식뿐 아니라 글로벌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미국 국채와 달러까지 매도하고 미국에서 이탈하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현상의 전조가 보였던 것이다.
미국 국채 시장이 극도의 혼란 국면을 보이자 급기야 트럼프 행정부는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강한 대응에 나섰던 중국에만 최고 245%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고 이외 다른 국가에 부과된 상호관세에 대해서는 90일 유예를 선언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일본·인도·영국·호주 등 우선협상 대상 국가를 발표했고, 많은 국가들이 미국과의 협상을 원하고 있으며 관세의 혼란을 빠르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발표까지 하면서 일정 수준 시장을 달래는 데 성공한다. 상호관세 유예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자동차 부품 관세에서도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반도체 등 핵심 가전제품에 대한 관세 역시 별도로 조치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강경한 어조로 대응하던 중국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베선트 재무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현재의 관세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관세율이 상당히 낮아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의 결별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해 미국이 제조업 제품을 수출하고 중국이 이를 소비하는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미·중 무역 협상이 악화일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미국 베선트 재무장관은 단기적인 금융시장의 등락에는 크게 개의치 않겠다고 언급했지만, 미국 금융시장의 충격은 미국 성장의 핵심 동력인 소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장동력의 훼손도 문제지만, 미국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하며 글로벌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와 기축통화인 달러의 신뢰가 흔들리는 것 또한 미국 행정부가 우려할 수밖에 없다.
과거 금융시장이 급격한 충격에 휩싸일 때는 중앙은행인 연준이 금리 인하와 같은 유동성 공급을 통해, 혹은 미국 재무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는 직접적인 경기 부양을 통해 충격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담이 높기에 연준은 단기적인 금융시장의 부침에 주목하면서 이른바 ‘돈 풀기’ 지원에 나서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의 국가 부채가 상당한 수준이고, 재정 적자도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어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 역시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 문제가 두드러질 때에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금융시장의 혼란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서 비롯됐다. 과거와 달리 통화 및 재정 정책이 이런 혼란을 제어할 수 없다면 결국 답은 관세 정책의 속도 조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상호관세 90일 유예, 중국과의 협상 기대 강화, 일부 핵심 품목 관세 부과 조절 등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향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세 협상에 따라 상당한 변동성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미국 이외 국가들이 더 번영할수록 미국도 더욱 번영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며 트럼프의 과도한 관세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지난 4월의 금융시장 혼란을 겪었던 트럼프 행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공존을 위한 현명한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