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가 있다.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언제 본방을 했는지도 알 수 없는 ‘자연인’들이 잠시 잠깐 내 눈을 사로잡는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니 오지의 삶은 마냥 신기할 수밖에 없지만, 이내 관심은 뚝 떨어진다. 체험하듯 한나절은 버틸 수 있겠으나, 거기서 살라면 하루도 못 버틸 게 뻔하다. 초고속 엘리베이터와 깨끗한 화장실 등등으로 둘러싸인 삶은 쉽사리 포기하기 어려운 법이다. 언감생심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빈민들의 삶에 유달리 관심이 많으셨던 김수환 추기경님도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자고 가라고 할 때마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1845년 7월4일, 28세 젊은이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숲속으로 찾아들었다. 그는 나무를 베어 통나무집을 지었고, 이내 작은 텃밭도 일구었다. 가능한 한 자급자족을 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청년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명문 하버드대 출신의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월든 호숫가에서 1847년 9월6일까지 약 2년2개월 동안 생태적 삶이 가능한가 실험했던 청년의 이름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 바로 <월든>의 작가이다.
소로는 호숫가에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책을 읽고, 대자연의 순환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삶을 “정신적 전환의 시간”이라고 표현하며 자연의 순리에 저항하지 않는 삶과 자기만의 진정한 자유를 얻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나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앞에 두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생의 가르침을 온전히 익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생태사상가 장일순은 학업 시기를 빼고는 고향 원주를 떠나지 않으며 지역에 뿌리박은 삶을 살았다. 원주를 기반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하늘, 땅, 물, 공기, 사람, 벌레는 모두 한 생명”이라는 생명 사상을 펼쳤다. 장일순은 종교 간 대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모든 종교는 담을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너는 어떤 종교이고 나는 어떤 종교라는 걸 존중은 하되 생활과 만남에 있어서 나누어져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생명은 하나니까요. 종교에 생명이라는 내용이 없다면 그 종교는 거짓말이죠.”
‘가톨릭일꾼’ 편집장 한상봉이 쓴 <장일순 평전>에 따르면, 장일순은 모든 생명의 태어남을 기뻐했다. 책에 따르면 장일순은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 중에서도 대단한 경사”라면서 “태어난 존재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거룩하다”고까지 칭송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거룩한 존재는 옆 생명에 기대어 살아간다. 무위당 장일순이 자주 언급했던 묵암 선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쥐를 위하여 밥을 언제나 남겨놓는다/ 모기가 불쌍해서 등에다 불을 붙이지 않는다/ 절로 푸른 풀이 돋아나니/ 계단을 함부로 딛지 않노라.”
소로가 내면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은 것은 ‘고독’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고독은 단절된 삶이 아니다. 월든 호숫가 통나무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것이었다.” 도시에 산다고 해도 마음만은 ‘자연인’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누군가와 혹은 풀 한 포기와도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소로와 장일순의 생명 사상은, 모든 생명과 평화를 누리는 삶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