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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전거

입력 2025.05.07 20:29

요즘 엄마의 근무시간은 3시간이다. 어린이집에 일자리를 얻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점심때면 일을 마친다. 일은 가뿐하지만 급여도 적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다. 몇달을 들여서 찾은 유일한 일자리였다. 대신 엄마는 걷는다. 아가들을 맞이하고 간식을 먹이고 한바탕 놀아주고 난 후, 시골 읍내의 천변을 따라 닦인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다. 백로와 오리들이 줄지어 날아가고 푸른 나뭇잎이 나부끼는 것을 보며 마을 한 바퀴를 천천히 돈다. 볕이 드는 시간에 산책하는 일은 엄마가 평생 처음 누리는 호사다.

“너 가지고 있던 그 자전거 어디에다 뒀니?” 날이 풀리자, 엄마가 내 자전거의 행방을 물었다. “자전거 타고 달리면 정말 시원할 것 같은데.” 자전거로 달리는 엄마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 자전거 나한테 없어.” 엄마가 묻는다. “왜?” 마침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전거 사줄까?” 햇빛을 받은 엄마가 싱긋 웃는다. 엄마를 닮은 토마토색이 어울릴 것 같았다.

어느 날 B가 다시 배달을 하겠다고 했다. B는 몇년째 취준생이었다. 밤낮없이 공부하면서도 당장 월세를 낼 소득조차 없었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며 통장은 바닥났고, B는 닥치는 대로 알바를 구했다.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했다. 7일 동안 쪽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 일했다. 그 와중에도 틈이 나면 배달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B에게 내 자전거를 내밀었다. 그에게는 배달을 위한 어떤 이동 수단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전거용 배달 가방은 5만원, 자전거포에서 배달 가방을 다는 데는 3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B가 온 동네를 누벼도 고작 2만원을 벌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이전처럼 배달을 시키지 않았다. B는 내게 자전거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가져가라고 말했다. 나는 B가 배달을 하다 부숴 먹은 휴대폰 거치대를 새것으로 고쳐 달아주었다. 그 자전거는 B의 것이다.

E는 얼마 전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고인은 45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심정지로 사망했다. 사인은 과로사였다. A는 계약직 사무직에서 잘린 후 학원강사 일을 밑바닥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C는 모아둔 돈이 바닥났지만 죽어도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집 밖을 나오지 않는 편을 택했다. D는 새로운 자격증 고시에 도전하기로 했고, F는 알바를 전전하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가 아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며칠째 화면에 토마토색 자전거를 띄워놓고 노려만 보고 있었다. 벌벌 떨고 있었다. 돈을 쓰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몇백만원이 우습게 녹아 없어졌다. 처음엔 문화생활을 포기했다. 봄이면 봄옷을, 여름이면 여름옷을 사는 것을 낙처럼 여겼던 내가 쇼핑의 근처도 가지 않았다. 외출도 줄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매 순간 열심히 살아왔으나, 언제라도 절벽에 내몰릴 것 같았다. 원고를 쓰다 말고 토익 모의시험을 쳤다. 공무원 시험을 검색했다. 가장 간단한 자격도 준비하는 데 최소 몇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학원 광고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그 일이 얼마나 ‘최악의 직업’인지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20대보다 더 빈곤한 30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통장 잔액은 그때보다 많아진 것 같지만, 지금부터 방황하게 될 수많은 예측 불가능한 날들을 생각하면 얼마가 있든 부족했다. 불안의 진폭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사람들이 죄다 어떻게 살아 있는지 의문이었다. 매 순간 일하고 있어도 숨통이 조여오는 듯했다. 곧 깨달았다. 이 공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텅 빈 이력서와 통장을 바라보았다. 원고를 썼고, 엄마의 자전거를 주문했다. 자전거는 싱그러운 토마토색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엄마가 눈앞에 일렁였다.

양다솔 작가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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