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는 제주의 푸른 바다 아래에서 삶을 이어왔다. 산소 공급장치 하나 없이 바다에 몸을 던져 전복과 소라, 해삼, 미역 등을 건져 올렸다. 17세기 조선시대 유배 생활을 하던 왕족 이건이 편찬한 <제주풍토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해녀를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채취하는 여자(採藿之女 謂之潛女)’라고 소개한다. 화산섬 제주, 척박한 땅은 그들에게 바다를 삶의 터로 열어주었다. 해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 엄마처럼, 그저 평범한 어머니이자 아내였다. 거친 파도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해녀들의 긴 숨결엔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이 배어 있다.
잠수 때마다 1분 이상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수확하는 해녀들 능력의 비결이 유전자 변이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UCLA·유타대 등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에 최근 공개한 보고서는 “해녀들의 놀라운 잠수 능력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제주 해녀 30명, 해녀가 아닌 제주 여성 30명, 한반도 내륙 여성 30명이 얼굴을 물에 담그고 숨을 참는 ‘간이 잠수’ 실험을 하면서 이들의 심박수와 혈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모든 실험자의 심박수가 감소했지만, 해녀는 가장 큰 폭으로 심박수가 감소하는 현상을 보여줬다고 한다. 잠수 중 심박수가 낮아지는 것은 에너지·산소 소비량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또 제주 여성들은 해녀 여부와 상관없이 잠수에 도움 되는 두 가지 유전적 차이가 있는 걸로도 조사됐다. 저체온증에 덜 취약하게 만드는 추위 내성과 혈압에 관련된 차이다. 제주 여성의 33%는 잠수 때 혈압 장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유전자를 지녔고, 내륙 여성은 7%만 보유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해녀가 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치 초능력을 가진 것과 같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일(현지시간) 제주 해녀의 유전자 연구를 통해 뇌졸중·고혈압 등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수백년을 이어온 바닷속 생존 능력, 즉 오래 숨을 참고 바다에 맞서도록 진화·적응한 흔적이 ‘해녀 유전자’라는 과학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서사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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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해녀들이 바다에서 해산물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