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서 효율적으로 뛰며
올해는 초반부터 골 폭발
“많이 배우는 지금 즐거워”
최고령 득점왕에도 도전

“아저씨, 끝까지 열심히 뛸게” 프로축구 대전 주민규가 지난 2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인터뷰하다 어린이 팬들로부터 선물받은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 | 황민국 기자

주민규(35·대전)는 대기만성의 상징이다. 또래 선수들이 은퇴하기 시작할 무렵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더니 이젠 더 발전하고 있다.
마라토너처럼 꾸준히 득점을 쌓는 선수였던 주민규는 올해 시즌 초반부터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법을 배웠다.
주민규가 올시즌 대전 하나시티즌에서 폭발적으로 쏘아올린 골 폭죽이 그 증거다. 13경기에서 8골로 득점 1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강등 위기에 몰렸던 대전도 승점 27점을 쌓아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 2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주민규는 “원래 난 슬로 스타터 기질이 있는 선수였다”면서 “올해 대전에서 배운 게 많아 더 발전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규의 가파른 골 사냥 페이스는 지난해 슬럼프와 맞물려 더 주목받았다. 당시 울산 HD 소속이던 그는 3개월 넘게 득점하지 못해 ‘에이징 커브’에 대한 우려가 컸다. 변화의 필요성을 확인했던 그는 대전에 입단하면서 거짓말처럼 반등에 성공하고 있다.
주민규는 그 비결을 현역 시절 최고 골잡이였던 황선홍 대전 감독과의 만남에서 찾는다. 34살이던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황 감독으로부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줄어드는 체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배웠다.
주민규는 “난 미드필더 출신이라 볼을 많이 따라다니는 스타일이었다. 볼을 많이 만지길 원하는데 스트라이커는 힘을 쓸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해야 한다. 또 경기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방향도 포지션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며 “과거에도 이런 것을 지시해주시는 감독님은 많았지만 이해할 때까지 가르쳐주시는 분은 황 감독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골잡이의 또 다른 덕목인 기다림의 미학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예전처럼 선발 출전하지 않는다고 조급해지지 않고, 골이 잠시 터지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주민규는 “내가 못 넣어도 구텍이 있다. 17살의 (김)현오도 잘해주고 있다”며 “예전에는 서울 이랜드FC에서 박건하 감독님에게 골잡이로 기본기를 배웠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선 정조국 코치님에게서 헤딩 노하우를 얻었다. 많은 걸 배워가는 지금도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웃었다.
주민규가 즐겁게 축구만 전념할 수 있는 바탕이자 비타민 같은 존재는 가족이다. 아내 김수연씨는 주민규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대전의 클럽 하우스 5분 거리에 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주민규는 “아내는 내가 행복하게 축구하길 바란다. 선수로 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스트레스를 안 주려고 배려해주는 최고의 배우자”라고 말했다.
가족에게 보답할 길은 결국 골이다. 주민규가 지금의 놀라운 득점 페이스를 시즌 마지막까지 유지한다면 23골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득점왕들의 기록(2024년 무고사 15골·2023년 주민규 17골)을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 2경기에서 잠시 쉰 주민규의 골이 10일 FC서울전에서 다시 터진다면 5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도 눈앞에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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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과 2023년 득점왕이었던 주민규는 국내 선수 최초로 통산 세 번째 득점왕, 그리고 에드밀손(만 34세)의 기록을 넘어 만 35세로 역대 최고령 득점왕까지 도전한다.
주민규는 “요즘 어린 팬들이 많이 생겼다. 나에게 그림까지 그려준 아이는 5살이라고 했다. 이 나이에도 팬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수가 될 수 있게 올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