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에서 운영 중인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가 오는 6월20일 개막 예정인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 대관을 취소한 데 대해 이화여대 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최근 성소수자 혐오 세력 등이 퀴어영화제 취소를 요구하는 민원을 집중적으로 제기하자 학교가 ‘기독교 창립 이념에 반하는 영화 상영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극장에 전하며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악성 민원을 수용한 것 아니냐”며 “성소수자 배제·차별은 대학 가치에 반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화권리단위연대체 ‘이음’에 소속된 학생 자치단체들은 8일 SNS에 ‘이화여자대학교의 한국퀴어영화제 개막 취소 비판 성명’을 연이어 공개했다. 이화여대 생활도서관은 “시민으로 여겨지지 못했던 여성에게 교육 기회를 부여하고자 했던 이화의 정신은 혐오나 거부, 차별이 아닌 평등한 세상의 실현에 있다”며 “퀴어의 존재를 ‘창립 이념에 반하는’ 존재로 규정한 이번 결정은 퀴어에 대한 탄압”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생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이화의 정신은 학내 퀴어 구성원들만을 비켜가나”라고 비판했다. 이화여대 교지편집위원회도 “이번 사태는 퀴어영화제가 담고 있는 모든 맥락과 문화에 대한 검열이며 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퀴어영화제는 지난해에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를 납득하기가 더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이화여대 재학생 김서현씨(22)는 “이전에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퀴어영화제를 개최했고 독립영화나 성소수자 관련 영화도 다수 상영해왔는데 대관 취소 소식을 듣고 황당했다”며 “기독교 학과 수업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분위기고, 학내에도 성소수자인 학생들이 존재하는데 ‘기독교 정신’을 핑계로 이러한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퀴어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지난 2일 “이화여대가 ‘다수의 민원이 접수됐으며 기독교 창립 이념에 반하는 영화 상영은 학교 내에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함에 따라 극장이 대관을 진행하지 않기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화여대를 지키고 사랑하는 이화인 일동’이라는 단체는 최근 퀴어영화제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에 온라인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한국퀴어영화제는 명백히 이화여자대학교 헌장 제1조 창립 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반하기에 이화여대 교육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이화인 동창 여러분 목소리를 내주셔서 어린 학생들의 교육 공간인 이화 땅이 전국의 동성애 홍보장이 되지 못하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항의 전화도 독려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창립 이념을 이유로 퀴어영화제 대관 취소를 압박했는지 묻는 질의에 “공식 입장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