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바보들의 행진, 바보의 역사](https://img.khan.co.kr/news/2025/05/08/l_2025050901000218000021941.jpg)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똑똑한 척하기보다는 바보처럼 보이기가 더 어렵다는 뜻이다. 난세에 대처하는 중국식 처세술의 고급 표현이라고 한다. 청나라 중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정판교(鄭板橋·1693~1765)의 말이다.
물론 바보들은 많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 한번 안 해본 자, 자기가 실은 바보인 줄을 모르는 바보야말로 진짜 바보인 줄을 바보들만 모를 뿐이다. 소년 급제하여 법대 위에 군림하다가 법에 취해 땅 디딜 줄 모르는 자들, 걸어다니는 헌법기관임을 자부하면서 거들먹거리기가 취미이거나 특기인 자들도 그 축에 포함될 것이다. 공당의 후보를 뽑아놓고 스스로 내팽개치며 그 당을 주물럭거리는 쌍바보들도 여기에 추가한다.
바보들은 모두 텔레비전에 우글거린다고 누가 일갈했다는데, 요즘 방송과 신문에 그들의 행각이 고스란히 중계되고 길이길이 저장된다. 바보들의 행진, 지켜보는 씁쓸함은 누구의 몫인가.
한편 바보가 바보라서 바보이겠는가. 바보들이 수두룩하지만 이런 바보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바보의 역사는 유구하다. 바보 온달로부터 시작한 그 역사는 오래고도 오래다. 강물에 반짝거리는 것들 많지만 그 강을 떠받치는 건 물살에 닳은 바보 같은 바닥의 돌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도, 노무현 대통령도 스스로 바보임을 자처했고 같은 바보와 기꺼이 함께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바보가 있다.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온몸으로 체득한 노동 현장의 열악함과 부조리를 깨닫고, 친구들과 노동조직을 만들어(1969년 6월26일) 그 이름을 ‘바보회’라 했던 사람. 후배 여공들에게 저녁을 사주면서 정작 본인은 한 술도 안 뜨길래, 왜 너는 바보처럼 안 먹느냐는 주인한테, 나는 먼저 먹었다고 동생들한테 말했기에 다시 먹을 수 없노라고 슬픈 거짓말을 했다는 바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48~1970).
그제는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다시 보았다. 바보처럼 또 반복되는 어느 한 대목. “우리 같은 사람들이 뭘 어떻게 해, 그냥 바보같이 사는 거지”라는 자조에 전태일은 말한다. “바보짓을 해서라도 바꿔야지.”
바보들 따위가 바보를 흉내라도 내겠는가. ‘바꾸어 보는’ 이요 ‘바로 보는’ 이의 준말인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