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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 철거 시작···떠나지 못한 고양이만 남았다

입력 2025.05.09 16:26

철거가 시작된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고양이만 골목을 지키고 있다. 서현희 기자

철거가 시작된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고양이만 골목을 지키고 있다. 서현희 기자

9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중계본동 종점’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사람들은 일제히 정류장의 왼편으로 향했다. 이 정류장의 왼편에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오른쪽에는 ‘백사마을’이 있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가 된 백사마을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렸던 백사마을이 지난 8일 철거되기 시작했다. 백사마을은 1967년 청계천·영등포·용산 등 정부 주도의 도심개발로 보금자리를 강제철거 당한 철거민들에게 거주지로 제공된 곳이다. ‘노원구 중계동 산 104번지’에 있었다는 이유로 백사마을이라고 불렸다. 1980년대에는 이 마을에 1200가구 이상이 모여 살기도 했다.

이날 찾은 백사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오래 방치된 집들이 눈에 띄었다. 창문은 여기저기 깨져있었고 지붕이 내려앉아 집안에 서까래와 기와, 방수포가 뒤섞여 썩고 있었다. 건물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페인트가 벗겨져 색이 바래 있었다. 철거가 시작된 일부 지역은 하루 만에 허허벌판으로 변한 상태였다. 철거공사 관계자는 “건물들이 낮고 오래돼서 굴착기로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철거된다”며 “보통의 공사보다 빨리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백사마을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직 시절 ‘주거지 보전사업’을 통해 골목의 형태나 주거 모습을 일부 남기는 방안이 고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성 등을 이유로 좌초되면서 오랜 시간 낙후된 채로 방치됐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있는 빈집 외벽의 벽화가 9일 뜯긴 채로 방치돼 있다. 서현희 기자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있는 빈집 외벽의 벽화가 9일 뜯긴 채로 방치돼 있다. 서현희 기자

주민들이 떠난 백사마을은 길고양이들만 남았다. 이곳을 들르는 ‘사람’도 이제는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는 이들뿐이다. 10년간 매일 백사마을 고양이의 밥을 챙겼다는 임동걸씨는 “지금은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밥을 챙겨주고 있지만 공사장으로 변하면 고양이들이 갈 곳이 없어 걱정이다”라며 “고양이 십여 마리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서 임시거처라도 마련하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상인들은 철거되는 마을을 지켜보며 씁쓸해했다. 마을 바로 앞에서 20년간 구두점을 운영한 황궁연씨(76)는 “전에는 가게 앞 정류장에 사람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알던 사람들이 다 떠나서 쓸쓸하다”며 “이제는 구두를 사는 손님도 없지만 적적한 마음에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사마을에는 약 3000세대가 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달 24일 서울시는 제3차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계본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변경)’ 등 4건의 사업시행계획을 위한 각종 심의안을 통과시켰다.

9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의 일부가 철거되고 있다. 서현희 기자

9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의 일부가 철거되고 있다. 서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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