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앞줄 왼쪽)와 권성동 원내대표(앞줄 오른쪽)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강제 교체에 실패하며 김문수 후보가 6·3 대선에 나설 당 후보로 11일 공식 등록했다. 초유의 후보 바꿔치기는 당원들 제동에 막혔지만, 12·3 불법계엄 공동책임을 져야 할 구 여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한을 오·남용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태를 답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성 없는 경선, 명분 없는 단일화, 비상식적·비민주적 후보 교체 시도로 국민의힘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당 안팎에서 친윤석열(친윤)계 세력 청산과 쇄신 압박을 받게 됐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주도한 대선 후보 강제 교체는 지난 10일 전 당원 투표에서 반대가 찬성을 앞서면서 최종 무산됐다. 김 후보를 주저앉히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입당시켜 하루 만에 새 후보로 세우려던 시도가 막판에 수포로 돌아갔다. 조속한 단일화를 요구해 온 당심조차 거부권을 행사한 셈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단일화에 찬성하는 당원 86%가 ‘11일 이전 단일화’를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심의 거부에는 속전속결식 후보 교체가 비상식적·비민주적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10일 오전 1시 김 후보 선출을 전격 취소하고, 오전 3시부터 1시간 동안만 32건의 서류가 필요한 후보등록을 받았다. 그날 새벽 입당한 한 전 총리만 후보로 등록했다. 김 후보를 비롯해 당내 경선에 참여한 경쟁 후보들 사이에서 “쿠데타 시도” “날치기”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강행했다. 권영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한 전 총리는 당원 투표 종료 전 “당원들의 명령” “국민의 명령, 시대의 명령”을 말했지만 명분과 절차를 왜곡한 ‘폭거’라는 판단을 받게 됐다.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 정리 과정은 ‘하룻밤의 난장’이 아닌 한 달여간의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4월 중순 시작된 경선 과정부터 이날 후보등록까지 당의 시선은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여부에 모였다. 불법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구 여당으로서의 사과, 반성적 대안은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출마 선언도, 입당도 하지 않은 한 전 후보가 중심에 서며 경선은 ‘예선전’으로 전락했다.
경선이 마무리된 뒤에는 공직 사퇴 후 출마한 한 전 총리와 김 후보의 단일화 문제가 당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윤석열 정부 2인자’ 한 전 총리와 ‘탄핵 결사 반대파’ 김 후보가 단일화를 두고 다투며 다시 이번 대선의 본질을 가렸다. 윤 전 대통령 제명·출당 조치, 친윤계의 불법계엄 옹호 행태 등 논의는 사라졌다. 대선 후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구 여권 세력의 주도권 다툼만 부각됐다. 경선 과정에서 ‘김덕수(김문수+한덕수)’를 외치며 조속한 단일화를 약속한 뒤 이행에 나서지 않은 김 후보, ‘대선 관리자’ 역할을 버리고 대선판에 뒤늦게 뛰어들어 어부지리를 노린 한 전 총리 역시 정치 신뢰를 떨어뜨리고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후보 바꿔치기 시도는 실패하고 권 비대위원장이 사퇴했지만 후폭풍은 거세다. 당장 한동훈 전 대표와 친한동훈(친한)계는 “쿠데카 세력이 자리보전하면 그 쿠데타는 성공”이라며 친윤 세력 청산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선 전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던 당내 주도권 다툼의 시간이 앞당겨진 셈이다. 김 후보에게 윤 전 대통령, 친윤계와의 절연을 압박하는 목소리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로 갈라선 김 후보와 당이 대선일까지 ‘원팀’을 이룰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국민의힘은 대선을 준비하는 동시에 당내 분열과 혼란을 수습하고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치 세력임을 입증해야 하는 다중 시험대에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