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30일 서울 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시민들이 상영작 예고 영상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멀티플렉스 업계 2·3위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합병 추진을 계기로 극장가의 침체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상용화가 겹치면서 줄어든 관객 수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영화를 극장이 아닌 OTT로 보는 콘텐츠 소비 트렌드 변화는 극장가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업계 1위 CJ CGV와 3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이 지난 8일 영화 계열사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은 상징적이다. 중앙홀딩스 관계자는 “극장이 이미 있는 지역에 과다한 출점 경쟁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브랜드가 통합되면 경쟁구조가 완화될 것”이라고 봤다. 매 분기 적자가 수백억 원씩 쌓이는 상황에서 합병을 통해 중복 투자 및 경쟁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업계 2, 3위 체인이 생존을 걱정할 만큼 극장가의 위기는 심각하다. 팬데믹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된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은 절대적으로 줄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연간 총 관객수는 2013년(약 2억1335만 명) 처음으로 2억 명을 돌파한 뒤 2019년까지 2억 명대를 유지하다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약 5952만 명)과 2021년(약 6053만 명)에 5000만~6000만명대로 급감했다. 2022년부터 연간 관객 수는 회복세를 보였으나, 매년 1억1000만~1억2000만 명 사이로 팬데믹 이전에 비해 반토막 난 수치다.
게다가 사람들은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팬데믹 이전에 극장을 찾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OTT를 통해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입장료의 급격한 상승도 극장 문턱을 높였다. 1만원 안팎이던 입장권은 1만4000~1만5000원으로 뛰었고, 일상적인 데이트 장소·문화 생활 공간이었던 영화관은 비싼 취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관람객 평 등 입소문을 듣고 ‘똘똘한 한 편’을 신중하게 고르는 관객이 늘다보니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지난 3월30일 서울 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승부> 좌석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극장 개봉 영화가 IPTV·OTT에 서비스되기까지의 주기가 짧아지는 것도 극장가의 부진을 부채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승부>는 개봉 6주(44일째)만인 지난 8일 넷플릭스에 풀렸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흥행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짧은 홀드백이었다. <소방관> <1승> <대가족> 등 화제작들도 극장 상영 후 얼마 안돼 OTT에 풀렸다. 극장 개봉과 SVOD(구독형 VOD) 공개 사이 간격이 과거 9~12개월에서 현재 3개월 내외로 단축된 것이다. 영화계에서는 흥행작들이 OTT에서 금방 서비스 될 때, “기다렸다가 OTT로 보겠다”는 심리를 가속화 시킨다는 우려가 나왔다.
극장가의 위기는 결국 영화계의 위기와 맞물릴 수 밖에 없다. 당장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극장 뿐 아니라 각사의 투자·배급 자회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의 합병도 추진하는데, 이 경우 영화 투자금 파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투자·배급사 관계자 A씨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투자처가 합쳐지는 것이니, 영화 투자를 받기 어려워지겠다는 낙담도 나오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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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영화계도 극장가 위기 타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게 할 ‘좋은 영화,’ ‘다양한 영화’를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한국 장편영화가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하는 등, 한국 영화계에는 ‘영화 기근’이 현실화되는 상황이다. 박찬욱·봉준호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제외한 대다수 한국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투자·배급사 관계자 B씨는 “활황기에는 텐트폴 영화로 수익을 내고, 그 수익으로 실험적인 영화에 도전할 수 있었다”면서 “이제는 어떤 영화도 수익이 난다는 보장이 없으니, ‘당장 잘 될 영화’에 초점이 가고 신인에 대한 투자는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말라가는 저수지 물을 보고 있는 기분”이라며 “‘영화관에서 볼 만한 영화’는 (질적으로)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