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대통령 선거가 순탄치 않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속도를 내 판결한 탓이다. 절차와 시기 모두 부적절했다. 대법원은 파기자판을 통해 ‘즉각 개입’은 하지 않았지만, 개입 의지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 대법원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스스로 키웠다.
다행히 서울고법이 재판을 선거 이후로 미루면서 당장 극한 갈등은 봉합됐다. 그러나 대법원의 속도전은 선거 이후에도 재판을 이어갈 것이란 포석으로 읽힐 수 있어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헌법 84조 문제도 남아 있다. 법 조항에 대한 해석이 우리 공동체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상황이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대법원의 행위는 사법부에 의해 선거가 교란되거나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선거는 인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우리 공동체 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다. 더군다나 법의 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 민주공화국에서 최종 심판자인 사법부의 ‘정치적’ 태도는 무엇보다 엄중해야 한다. 혹자들은 사법부의 이번 판결과 그 과정을 두고 ‘내란의 지속’을 말하지만 ‘규범 붕괴의 지속’에 가깝다.
대법관들의 엇갈린 판결 양상은 또 다른 우려를 낳게 한다. 공교롭게도 파기환송 의견을 낸 대법관과 기각 의견을 낸 대법관은 각각 윤석열과 문재인이 임명했다. 이번 판결을 순수한 판결로만 볼 수 있을까. 규범의 붕괴와 정치적 양극화는 상호 긴밀하다. 이런 맥락에서 대법관을 30~100명으로 늘리자는 주장은 정파적 역관계를 바꾸려는 시도일 뿐이라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다. 규범의 붕괴와 정치 양극화라는 맥락에서 사법개혁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에게 극도로 집중된 사법부에 대한 인사권을 제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이로울 것이다.
대통령이 지닌 제왕적 권한은 1987년 헌법에서도 대부분 존치됐다. 국회해산권과 비상조치권이 사라졌을 뿐 대통령은 여전히 예산편성권, 법률안제출권, 긴급명령권을 비롯해 수많은 핵심 기관의 인사권을 지닌다.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단번에 가질 수 있는 승자독식의 정치구조 탓에 우리 정치는 대통령직을 둘러싼 쟁투로 점철됐다. 이러다 보니 정당은 사당화될 수밖에 없고 양당제 정치구조가 고착됐다.
이번에 선출될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들을 나누거나 내려놓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권력 분산을 약속했던 이들 모두 선거의 승리자가 되자 말을 바꿨다. 선거 국면이지만 모든 관심은 정책과제와 공약 대신 정치적 대립에 집중된다. 선거 그 자체가 내전의 연속이고 모두가 참전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자기파괴적 내전을 끝내는 길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가 힘을 나누게 하는 길뿐이다. 권력의 독점은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의 퇴행을 낳는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