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수준 높이는 성평등 정책
심각한 인구 붕괴·경제 저성장 등
한국 사회 위기 해소시킬 처방전
정치권 귀 기울이며 실현 노력을
자고 일어나니 밤새 후보가 바뀌어 있더라는 국민의힘 후보 등록 소동도 일단락됐다. 비상식적인 당 지도부의 행동을 당원들이 바로잡은 상식의 승리였다. 오늘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이제 22일 후면 새 정부가 탄생할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만큼은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에 대한 토론에 집중해야 한다.
새 정부의 시대적 사명은 민주주의 회복과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구축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권의 압수수색 통치와 12·3 불법계엄 국면에서 광장으로 나선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무너진 민주주의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자존심이 있었다. 새 정부는 이런 자존심에 부합하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상해가야 한다. 형형색색의 응원봉으로 광장을 밝힌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실현해갈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폭도 넓혀가야 한다.
성평등 정책은 새 정부의 과제 중 가장 시급한 영역에 속한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선 1호 공약이 그 근거다. 약속답게 윤석열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여성가족부와 정부 각 부처 성평등 정책 부서의 권한을 줄이고 무력화시켜왔다.
성평등 정책은 ‘성평등 민주주의’라는 국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성평등 민주주의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고 성별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해 나감으로써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여간다는 이념이다. 성별 임금 격차와 돌봄 격차, 즉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낮은 임금과 가족에서 여성의 높은 돌봄 부담을 해소하는 일은 ‘차이’와 ‘차별’,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사회 정의의 수준을 높여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성평등 정책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해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첫째, 인구 붕괴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의 이면에는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거의 모든 조사에서 남녀의 출산 의향이 모두 떨어져왔지만, 여성의 출산 의향은 남성에 비해 훨씬 낮게 나타난다. 2024년 6월 발표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서 30대 무자녀 응답자 중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다는 사람은 남성 49.1%, 여성 30.9%로, 여성의 출산 의향은 남성에 비해 3분의 2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당연한 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유럽 국가들의 조사를 살펴보면, 남녀가 비슷한 출산 의향을 가지고 있거나 여성의 출산 의향이 더 높게 나타난다(유럽연합, <세대와 젠더 조사>). 한국 여성의 낮은 출산 의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모성 페널티(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여성이 직장에서 받게 되는 불이익)와 깊은 관련이 있다. 2024년 미국 국립경제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자녀 페널티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 맞벌이가 규범이 되는 사회에서 성평등 정책으로 여성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둘째,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로서 성평등 정책이다. 2015년 유엔여성기구는 ‘경제성장과 사회재생산: 원인이자 결과로서 성 불평등’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쓴 브라운스타인 박사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구 재생산이 중요하며, 여기서 성평등은 매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선진국에서 인구감소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경제성장의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 돌봄서비스 확대와 가족 내 돌봄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성평등 정책이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지향 경제를 추구하는 나라에서는 사회적 돌봄과 성평등을 함께 추구하는 고진로(high road) 전략 없이는 성장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새 정부 성평등 정책에 관한 중요한 제안들이 발표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혐오와 차별을 넘어 성평등 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제21대 대통령선거 젠더정책과제’를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남인순 의원 등 16명의 의원이 공동 주최한 ‘새 정부의 성평등 정책: 비전과 과제를 찾아서’ 토론회를 열었다.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여러 여성단체와 사회집단들이 성평등 정책 과제들을 제시할 것이다. 정치권이 귀 기울여 듣고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