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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서, 양회동

오월이다. 양회동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 혼란한 오월을 보낼 수 있을까? 건설노동자 양회동은 2년 전, 노동절인 5월1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2023년 서슬 퍼런 대통령 윤석열은 장관들 앞에서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를 다부지게 외쳤다. 건설노동조합을 ‘건폭’이라는 폭도로 명명한 순간, 그 말은 곧 힘이었고 법이었다.

경찰은 건설노조 조합원들 검거에 혈안이 됐다. 1계급 특진 50명이라는 이례적인 포상 때문이다. 건설노조 사무실에 22차례의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동안 노동조합의 활동은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갔다. 225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소환됐다. 이 중 42명이 폭도들의 우두머리로 지목되며 구속됐다.

양회동이 분신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건설노조는 8만명 가까웠던 조합원이 4만여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얼마 전 연구 때문에 건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에 대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지’ 물었다. 그는 아주 잠깐 나를 조용히 쳐다보았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예전 같으면 건설노조가 그렇게 했겠죠.”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다. 그래도 양회동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상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양회동 2주기에 맞춰 나온 책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에는 건설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였는지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노동조합 자부심이 유별난 것은 그들의 ‘말’ 때문이다.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자로 모이자 건설사가 그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로소 말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노동조합을, 말할 때마다 변화하는 일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 전 건설노동자들이 북토크를 열었다. 2년이 지났지만, 세상 걸걸한 사내들이 양회동 이름 석 자를 차마 입 밖에 내놓지 못하고 아이처럼 울었다. “건설노조 가입하고 수입은 줄었지만 일할 맛이 났어요. 더 안전해지니까. 그때 제가 구속됐을 때라 분신했다는 것도 몰랐어요. 출소하고 묘소에 찾아가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다 왔어요.” 양회동의 유가족이 건설노동자의 말들에 밑줄을 긋고, 동료들에게 낭독을 해주었다. 그들의 말은 서로를 지탱해주며,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지금은 공권력에 탄압당하고 있지만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예요.” 대통령은 탄핵당했지만, 그들에게 가해지는 권력은 여전히 그들의 삶과 노동, 긍지와 사랑을 짓누른다. 청산되지 않은 것은 내란의 잔재가 아니라 부서진 일터와 삶을 회복하려는 정치의 부재다.

양회동은 법원 앞에서 분신했다.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에 등장하는 시골 남자는 법(문) 앞에서 헛되게 기다리기만 했다. 양회동은 시골 남자보다 <소송>의 K를 닮았고 더 나아갔다. 결백을 주장하는 K는 말한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법이 양회동의 말을 빼앗으니 그는 법 앞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그건 법을 불태운 것이기도 하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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