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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詩想과 세상]80㎝

너의 반쯤 감은 눈동자
아니 반쯤 뜬 눈동자

너를 잊을 수 없게 하네
나를 견딜 수도 없게 하네

어린이집에 간 지 겨우 닷새째
이불을 씌우고 베개를 올린 거대한 그림자 아래
너의 발버둥과 파닥거림이 이어지던 14분
네 어미 보티늉은 네가 누운 작은 관에
털신과 장갑을 함께 넣었단다
영상통화로 입관식을 지켜보던 네 외할머니는
베트남 하띤에서 오열하는구나

나는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얼음장 같아 얼른 손을 뗐지만
손바닥엔 화인이 찍히고 말았구나

김선향(1966~)


어린이집에 맡겨진 베트남 아이가 있었다. 낮잠을 자지 않아 영원히 숨을 쉬지 못하게 된 아이. “80㎝”의 작은 아이가 발버둥 치다 멈춘 그 시간, 엄마는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아직 살아 있었던 14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조여오던 질식의 14분 동안, 아버지는 공장 일을 하다가 허리 수술을 받고 누워 있었다. 한국 사람처럼 돌잔치 때는 백설기를 돌리고 싶었다던, 이 부부의 소망은 무덤이 되었다. 9개월 동안 세상에 잠깐 머물다 떠나간 아이.

아이의 “반쯤 감은 눈동자” “아니 반쯤 뜬 눈동자”를 지켜보던 시인은 그 뺨에 손을 댄 이후, 손바닥에 지울 수 없는 “화인이 찍히고” 말았다. 시인의 붉은 손바닥은 더 이상 이전의 손바닥이 아닌 것이 되었다. 80㎝ 어린아이가 세상에 왔던 이유, 그렇게 가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이 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가 되어가는 이주민들은 우리의 또 다른 거울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 온 이주민이자 서로에게 이방인들이다. 서로의 고통에 빚을 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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