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정부로부터 인종차별 받아” 주장
트럼프, 난민 지위 부여 행정명령 서명
남아공 정부 “거짓 주장, 오히려 특권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들이 지난 2월15일 프리토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실상 모든 난민의 입국을 거부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들을 신속하게 난민으로 받아들여 논란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오전 남아공의 네덜란드 백인 정착민 후손인 아프리카너 49명을 태운 미국 정부 지원 전세기가 미국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아프리카너들은 흑인 정부로부터 인종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남아공 정부가 최근 발표한 민간 소유의 토지를 국가가 수용하는 정책이 아프리카너들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봤다. 이 토지수용책은 과거 아파르트헤이트(백인 정권의 유색 인종 차별 정책) 기간 백인들이 흑인의 토지 소유권을 박탈해, 현재 인구의 7%에 불과한 백인들이 전체 토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남아공에 대한 미국의 모든 지원을 중단하고 아프리카너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보통 난민 신청 절차는 수년이 걸리지만 아프리카너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3개월 만에 미국으로 향하게 됐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수단·콩고민주공화국 등 분쟁 지역에서 피난 온 이들의 난민 입국을 전면 중단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보수적이고 기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프리카너에게만 난민 입국을 허용했다.
하지만 남아공 정부는 아프리카너가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며 “오히려 아프리카너는 자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너는 남아공 정부의 장·차관 등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등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토지수용책과 관련해서도 아직 민간 소유의 토지를 몰수한 사례는 없으며 엄격한 조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정부가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권 단체 등은 이러한 트럼프 정부의 결정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시스템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왜 전쟁과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국가 출신의 사람들보다 아프리카너가 우선순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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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프리카너들의 난민 입국으로 남아공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갈등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정부는 남아공이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것을 두고 “미국에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남아공 정부 관계자들은 “아프리카너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한 것은 남아공의 국가 신용을 실추시키려는 정치적 시도”라고 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8000명 이상의 아프리카너가 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