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10일까지 세 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지난해 12월3일 밤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로 내란이 시작된 것이 첫 번째 쿠데타였다. 두 번째 쿠데타는 조희대 대법관이 저지른 사법 쿠데타였다. 세 번째는 국민의힘에서 경선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선 후보를 교체하기 위한 막장 드라마였다. 세 번의 쿠데타는 모두 실패했다.
새로운 미래 가리킨 ‘빛의 혁명’
세 번의 쿠데타가 성공하지 못하게 한 것은 과거부터 축적되어온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과거의 계엄령과 내란에 저항했던 민주화운동을 떠올렸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죽어갔던 이들처럼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비폭력, 평화의 방법으로 폭력의 반대편에 섰다.
이 과정에서 입만 열었다 하면 국민을 말하고, 국익을 말하던 ‘엘리트 카르텔’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저급한 욕망에 찌들 대로 찌든 자들은 독재를 넘어 파시즘이라도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포옹할 자들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아버렸다.
그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빛은 찬란했다.
‘빛의 혁명’은 유쾌했으며, 현재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가리켰다. 아마도 국민의힘의 쿠데타를 정리한 데에도 민주주의의 빛이 작동했을 것이다. 비록 내란 우두머리를 정리하지 못하고, 그에게 휘둘리는 자들이 장악한 당이었지만, 그 당의 당원들에게는 민주적 절차 정도는 충분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불안하다. 과거의 도움을 받은 현재라면 지금 현재에서는 무엇으로 미래에 도움이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지난 5월8일 오전 9시 국회 2문 앞에서는 조촐한 어버이날 행사가 있었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열사들의 부모들을 모시고 그분들에게 카네이션꽃을 달아드렸다. 이 부모들은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기 위한 천막농성과 피케팅을 4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 4년 동안 14명의 열사 부모들이 세상을 떠났다. 1년 안에 또 몇분이 돌아가실까? 민주주의를 위해 한목숨 바친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자는 법인데, 한 차례 거부권 행사 뒤에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하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싶어 안달인 세력들은 과거 민주화운동을 국가의 중요한 유산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가로막는다.
“표 안 된다” 밀려나는 진보 의제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투쟁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33조가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은 하위 법률인 노조법 등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법이 만들어진 게 1953년, 한국전쟁 중이었는데, 그 뒤에 개악만 되었을 뿐 현실에 맞게 개정된 적이 없다.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거나 노동조합을 만들어 파업에 나섰다가 손배 폭탄을 맞아 가정까지 파괴되는 이 비극을 끊어야 한다. 잔인한 노조파괴법에 의해 죽어갔던 많은 노동자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재난 참사와 산재 참사는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위험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게 ‘생명안전기본법’이다. 지난 5월7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훈 작가는 “마땅히 통과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치 이슈에 밀려 가지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그냥 사장돼 있는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1년, 우리는 언제까지 추모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어디 이것뿐이랴. 광장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발언한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평등을 향한 수많은 사회개혁 과제들은 대선 과정에서 다른 공약들에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거의 죽은 자로부터 용기를 얻은 우리라면, 지금은 무엇보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새 정부에서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차별을 막고, 평등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자고 하면 안 될까? 21대 대선 선거운동 2일차인 오늘도 누가 어디서 억울하게 죽어갈지 모른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