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고양이 ‘영돌이’가 카라 더봄센터에서 발바닥에 입은 화상을 치료하던 중 렌즈를 바라보고 있다.
“구조하려고 다가갔을 때 도망가지 않는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구조를 하다보니 발바닥에 화상을 입어서 도망치지 못하는 거였어요. 영돌이도 그랬죠.”

동물권행동 카라 유지우 활동가가 화상을 입은 발바닥에 드레싱을 받는 고양이 ‘영돌이’를 보며 말했다. 영돌이는 지난 3월에 발생한 경북 산불 당시 안동에서 발견됐다. 당시 무너진 슬레이트 판잣집 벽돌 위에 앉아 있던 영돌이는 눈 위와 귀에도 2~3도의 화상을 입은 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로 구조됐다. 산불 발생 한 달째인 지난달 22일 경기 파주시 ‘카라 더봄센터’에서 만난 영돌이의 귀에는 새 살이 돋기 전 딱지가 져있었다. 화상으로 뜨지 못했던 두 눈을 크게 뜨고 카메라 렌즈를 바라봤다.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블핑’이의 몸통에 남은 화상 위에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뒤 반려견 훈련소인 ‘독클래스’에서 지내는 ‘똘똘’이는 화기로 인해 시력의 상당 부분이 손실됐다.

독클래스에서 지내는 ‘봄이’가 켄넬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불은 반려동물들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경북 산불로 인해 2000마리 가까운 개나 고양기가 죽거나 다쳤다. 이 중 부상이 심하거나 보호자를 알 수 없는 약 200여 마리가 ‘루시와 친구들’과 같은 동물단체나 안동과학대 반려동물케어과 학생 등에 의해 구조됐다.

경기 반려마루 견사에 들어온 ‘라온’이 카라 유지우 활동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리아’가 경기 반려마루 견사로 들어오며 냄새를 맡고 있다.

‘하루’가 경기 반려마루 견사에서 다리에 입은 화상을 치료받고 있다.
“자, 멀리 가는데 예쁘게 입어야지.” 영돌이가 드레싱을 받는 동안 유지우 활동가는 앞서 치료를 마친 강아지 라온이에게 옷을 입혔다. 라온이는 마찬가지로 경북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밤길이, 오스카와 함께 이동장에 담긴 채 2시간 여를 달려 경기 여주시 반려마루에 도착했다. 이날 반려마루에는 라온, 밤길, 오스카를 비롯해 경북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20여 마리가 도착했다.

어미 ‘베베’와 함께 구조된 ‘미츄’가 형제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마당견들은 중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갓 태어난 새끼들과 함께 구조되기도 했다.

경기 반려마루 훈련사가 ‘하양이’를 쓰다듬고 있다.

산불에서 구조된 강아지들이 경기 반려마루에서 야외활동을 하고 있다.

등에 화상을 입은 ‘솁’이 반려견 훈련사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산불현장에서 구조된 새끼 강아지들이 경기 반려마루 견사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경기도 내 유기견을 보살피며 입양가족을 찾아주는 반려마루는 이번 산불을 ‘국가적 비상사태’로 보고 화마에서 구조된 강아지들을 4개월간 돌보기로 결정했다. “라온아 잘 지내.” 이동장에서 나와 새로운 견사에 들어온 라온이는 네 발에 붕대를 감은 채 유 활동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라온이를 비롯해 구조 후 출산한 어미와 새끼 등 60마리의 산불 피해견들은 반려마루에서 신체검사와 전염병 예방접종, 사회화 활동 등을 하며 새로운 가족을 기다린다.

경북 안동시 추목리의 한 마을에 산불로 무너진 창고 앞에 진도믹스견 두 마리가 묶여 있다.

창고에 묶인 진도믹스견 중 한 한마리가 비에 젖은 채 렌즈를 바라보고 있다.

창고에 묶인 강아지가 정미씨가 준 사료를 먹고 있다.
“저기 보시면 지붕 밑에 애들이 묶여 있는거 보이시죠?” 전국적으로 굵은 빗줄기가 내렸던 지난 1일 박정미씨가 안동의 한 마을에서 산불로 지붕이 주저앉은 창고를 가리켰다. 안동 지역에서 배달일을 하던 그는 산불이 진정된 후부터 매일 피해 지역에 방치된 강아지들을 돌보고 있다. 검게 그을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창고 지붕 밑에는 흰색 진도믹스견 두 마리가 묶여 있었다. 정미씨가 강아지들에게 닭고기 간식을 내밀자 비에 젖은 녀석들은 허겁지겁 받아 먹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먹이를 주러 가자 밭지킴이견이 이들을 반기고 있다.

산불 피해 현장에 묶인 밭지킴이견.
안동과 청송 등에는 아직도 100마리가 넘는 마당견과 밭지킴이견이 화마가 휩쓸고 간 곳에서 목줄에 묶인 채 살고 있다. 대피소에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수가 없는데다 보호자들 중 대다수가 이동이 힘든 노인이다 보니 강아지들을 돌보기 어려운 탓이다.

박정미씨가 산불로 주택이 소실돼 주민이 떠난 집에 묶인 강아지에게 간식을 건네고 있다.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안동시 고곡리의 한 밭지킴이견이 박정미씨가 내민 닭고기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

주민이 떠난 집에 묶인 강아지가 박정미씨가 사료를 준비하자 꼬리를 흔들고 있다.
“아휴, 누가 여기에 초코파이를….” 정미씨가 먹이를 주기 위해 들린 다른 강아지들의 밥그릇엔 누군가가 둔 초코파이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강아지에게 초콜릿이 ‘독’인줄 모르는 누군가가 어설프게 ‘정’을 베푼 것이다. “여기분들도 강아지를 아끼는 분들도 계시지만, 노인들이시고 삶의 터전을 잃은 상황에서 강아지들에게 신경을 쓰기 힘든 환경인거죠.” 정미씨가 밥그릇에서 초코파이를 덜어내고 그릇을 씻었다. 그의 시선이 타버린 산 능선을 향했다. “이제 곧 장마도 올텐데 나무가 타버린 산에서 큰 비가 내려 산사태라도 일어나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말끝을 흐리며 밥그릇에 사료와 물을 채워넣는 정미씨 앞에는 목줄에 묶인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밥그릇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