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중국동포 이주노동자

중국동포 이순희씨가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인 딸 엄정정씨 생전 함께 찍은 사진. 이순희씨 제공
중국동포 이순희씨(55)는 2002년 한국에 왔다. 이씨는 보험판매원으로, 남편은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했다. 중국에 사는 딸의 미래를 위해 고단한 삶을 이겨냈다. 부부는 2015년 경기 시흥시에 중국식당을 차렸지만 코로나19 때문에 2022년 문을 닫아야 했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딸 엄정정씨는 지난해 3월 한국에 왔다.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며 곧바로 경기 화성시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 취직했다. 6월24일, 엄씨는 스물다섯 살에 ‘아리셀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6·3 대선에 투표권이 없는 이순희씨는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차별하지 않는 대통령,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한국 국민이 좋은 대통령을 뽑으면 외국인에게도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는 그냥 대통령이 누가 되든 바라만 봐야 하잖아요. 그래도 한국이 좋은 나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는 아리셀 참사 같은 일이 없는 한국을 만들어주길 바라요.”
아리셀은 외국인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불법 파견받아 품질 미달의 군납용 전지를 만들었다. 소방교육과 안전교육이 없었다. 비상구를 열 수 있는 출입카드는 정규직에게만 지급했다. 이씨는 “안전교육만 잘 됐어도 이런 사고가 있었겠냐”며 “그렇게 위험한 곳인 줄 알았다면 딸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23명이 한 곳에 몰려서 죽었어요. 아무도 출구를 알려주거나 열어주지 않았잖아요. 울화가 도져서 날마다 눈물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아리셀 참사 생존자 20명은 대부분 한국인 정규직이었다. 사망자 23명 중 17명은 엄씨 같은 중국인이었다. 참사 발생 직후 아리셀 측은 중국인 유가족들에게 중국 길림성 임금 기준을 적용한 보상안을 제시했다. 아리셀의 모기업 에스코넥의 박순관 대표는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 2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로 딸을 잃은 중국동포 이순희씨가 지난해 6월 화성시청에 마련된 추모분향소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이씨는 “한국이 외국인을 많이 차별한다는 걸 아리셀 사건을 겪으며 알았다”며 “가해자들은 고개 빳빳이 쳐들고 사는데 피해자만 당하고 싸워야만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이 노동부를 찾아가 ‘왜 안전감독 안 했냐’고 소리쳐야 한다는 게 비참하더라고요. 유가족들은 삶이 없어졌어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3 불법계엄으로 촉발한 ‘중국인 혐오’는 이씨의 속을 태운다. 이씨는 ‘중국 공작 부정선거론’ 주장에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다. 한국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자기 국민을 욕보이는 것이 말이 되나요. 한국 선거가 중국 마음대로라면 한국 국민들은 뭐가 돼요. 제가 한국에서 20년 살면서 보니까 정치인들은 잘 된 일은 ‘내가 잘 했다’고, 잘못된 일은 ‘남 때문에 잘못됐다’고 해요.”
이씨는 6·3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을 향해 “자신보다 국민을 사랑하고,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그래도 외국인이 살기에 괜찮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한국 살면서 죄 안 짓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동네 사람들과도 친구처럼 잘 지냈어요. 지금도 한국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는데 차별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소방당국이 지난해 6월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