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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출한 아이들

4월 초 검정고시가 있었고, 진료실은 결과를 ‘보고’하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내가 진료하는 10대 중 3분의 1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어서다. 예전에 학교 안 다닌 아이는 대개 가출을 반복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 혹은 심한 폭력의 피해자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10년 새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에는 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거나 학폭위가 열릴 수준의 충돌을 빚기보다는 학교 다니는 게 최고의 스트레스인 아이들이 많다. 부모는 선량하고 아이를 무척 염려한다. 경제적으로 중산층이며 부모 모두 양육에 적극적이다. 아이 성향은 내성적인 편이고, 초등학교까지 공부 잘하고 학원도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 학교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교복까지 입고 나서려다가 멈춰요.”

어렵사리 부모가 학교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지만, 교문 앞에서 등교를 포기해버리는 날도 늘어난다. 학교 가는 게 큰 모험이 된다.

이유를 들어보니 아이들 떠드는 소리, 책걸상 부딪치는 소리가 고통스럽다고 한다. 옆자리에서 무신경하게 내뱉는 말이나, 툭툭 몸이 부딪히면 위협으로 느낀다. 부모의 기대에 맞추려는 학업 스트레스가 얹히고, 학년 초에 친구들 그룹에 끼지 못하면 급식을 안 먹고 하루하루가 버거워지다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하고 자퇴로 이어진다.

소아정신과 의사 류한욱과 심리학자 김경일이 쓴 책 <적절한 좌절>에서는 이 현상을 ‘집으로 가출한 아이들’이라 절묘하게 표현했다. 처음에는 갸우뚱했는데 읽어보니 고민하던 부분이 명료해졌다. 예전에는 갑갑한 집과 권위적 부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을 했는데 지금 10대에게는 집 밖, 특히 학교가 위험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집 안으로, 자기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학교는 시끄럽고 불편하고 타인의 시선을 종일 견뎌야 하니 교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지친다. 생활 소음 수준의 외부 자극이 고통스러운 공사장 소음으로 느껴진다. 그에 반해 방 안은 안전하고 평온하며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느덧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용기를 낼 일이 된다.

아이를 방치해서 그런 게 아니다. 너무 열심히 아이를 양육한 것이 역효과를 냈다.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의 길을 찾고 장애물을 미리 제거해주며 함께 나아갔을 뿐이다. 부모의 애정이 과잉 공급됐고, 아이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자라나 ‘정서적 비만’이 되어버린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결심이 아이의 사회적 근육을 흐물흐물하게 하고 정서적으로 과하게 민감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잘해보려는 부모와 민감한 아이가 하나가 되어버린 부정적 시너지다.

아이들은 두통, 소화불량 같은 애매한 신체 불편감을 느끼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호흡이 곤란한 것 같다는 신체 신호를 불안으로 인식하는 게 특징이다. 조용한 자기 방에 머물다 보니 내면에서 오는 신호들에 귀를 기울이는 데 익숙해지고 쉽게 잘 찾아낸다. 부모는 심리상담을 데리고 간다. 그러나 내면의 상태를 관찰하는 데 몰두하는 아이들에게 일반적 상담은 그런 면을 더 강화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부모 문제’로 타깃이 바뀔 위험도 있다.

방을 나와 집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내면의 신호에서 생활 소음을 적당한 잡음으로 이해하고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집 밖은 위협이 아닌 호기심의 대상이 돼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증상을 묻지 않는다. 뭘 했는지 묻고 칭찬하고 북돋아준다. 관심을 외부로 돌리며 탐색하도록 하면 내면의 신호는 줄어든다. 이 과정은 천천히 일어난다. 부모는 지켜보며 외출을 제안하고 차근차근 재활치료를 하듯 사회화 과정을 다시 거치도록 하되 개입은 최소화한다. 부모가 자기 불안을 견딜수록 아이는 성장을 다시 시작한다. 세상을 향한 진짜 가출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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