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인도태평양 연구소’ 간담회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들 전망 내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전직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들이 전망했다. 대만해협 등에서 미·중이 충돌할 가능성을 고려해 현재 대북 방어가 초점인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 등을 조정하는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랜들 슈라이버 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차관보(왼쪽)와 일라이 래트너 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차관보가 13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인도태평양 안보연구소(IIPS)가 주최한 언론 간담회에서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워싱턴 | 김유진특파원
트럼프 1기 행정부 국방부에서 인도태평양 안보 차관보를 지낸 랜들 슈라이버 인도태평양 연구소(IIPS) 회장은 13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전략(NDS) 수립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대두할 것으로 내다봤다.
슈라이버는 NDS의 밑그림을 제시한 잠정 국방 전략 지침이 “모두 중국에 관한 것”이었다면서 NDS가 “한·미가 미·중 경쟁을 구성하는 여러 사안에 관해 협력하는 방안”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이라는 좁은 차원의 부담 공유 논의”에 국한되지 않고, “중국과의 광범위한 경쟁과 관련해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의 유연성 확대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간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논의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소개한 그는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구성을 바꾸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국이) 중국 억제에 보다 집중하는 만큼 현재 북한 도전 (대응)에 최적화된 주한미군에 관해 들여다보고자 할 것”이라고도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동아태 부차관보를 지낸 리처드 로리스도 당시 노무현 정부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했던 것을 회고하며 “매우 어려운 대화였고,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한 뒤, “트럼프 행정부의 초점이 중국인 점을 고려하면 전략적 유연성이 다시 중요한 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방부 인태 안보 담당 차관보를 지낸 일라이 래트너(현 마라톤 이니셔티브 수석)도 중국 대응과 관련해 동맹들에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하는 흐름이 초당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래트너는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에게 더 많은 상호주의를 기대하는 추세는 트럼프 행정부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래트너는 미국이 호주, 일본 등과 비상사태 시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면서 “한국과도 동남아시아나 태평양 도서국 등 한반도 역외 사안에서의 협력을 모색하는 대화를 시작했다”고 했다. 래트너는 또한 “한국은 한·미·일 3자 협력의 일부이나 다른 지역에서는 부재했다”면서 “미국이 호주, 필리핀, 인도까지 전례 없는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는데 한국도 북한에 초점을 두는 것에서 벗어나 이러한 소다자 협력에 좀 더 통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래트너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동맹과의 안보 협력에 미칠 수 있는 긴장을 줄이려면 미국이 “양측이 수용 가능한 관세 인하 합의”를 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래트너는 “아시아 동맹들은 협상장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경제, 무역 이슈에서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성심성의껏 노력하고 있다”면서 “관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양측 모두가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합의를 할 의향이 있느냐에 달려있으며, 그렇게 할 경우 (미국과 동맹 간) 중대한 분열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 많이 본 기사
싱크탱크 ‘프로젝트 2049’의 후신인 IIPS 출범을 계기로 열린 이날 간담회와 이어 열린 패널 토론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부터 바이든 행정부까지 4개 정부 출신 국방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7명이 모두 참석했다.
이들은 ‘전쟁, 피벗(pivot), 경쟁: 20년간의 아시아 정책 만들기’를 주제로 열린 토론에서 역대 미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과 한국·일본 등 동맹과의 협력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행사에는 야마다 시게오 주미 일본 대사를 비롯해 필리핀, 대만 정부 관계자들도 청중으로 참석했다. 제니퍼 홍 IIPS 선임 국장은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에는 초당파주의가 자리한다는 점을 오늘 행사가 강력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인도태평양 안보연구소(IIPS)가 주최한 패널 토론에서 전직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들이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리처드 롤리스, 제임스 신, 월리스 칩 그레그슨, 마크 리퍼트, 제니퍼 홍 IIPS 선임 국장, 데이비드 시어, 랜들 슈라이버, 일라이 래트너 전 차관보.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