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플랙트그룹 로고.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와 맞물려 성장 중인 공조(HVAC)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이 분야 선도 기업인 독일 플랙트그룹을 2조원대에 인수한다. 가정·상업용 시스템에어컨을 넘어 대형 산업시설 공조 수요까지 잡겠다는 전략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대형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면서 위기론을 잠재우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삼성전자는 14일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이 보유한 플랙트 지분 100%를 15억유로(약 2조38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17년 총 8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9조3400억원)에 하만을 인수한 이후 8년 만에 성사된 조 단위 M&A다.
공조 사업은 가정은 물론 상업·산업시설에 최적의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제어하는 분야다. 기후 위기와 친환경 에너지 규제 강화로 수요가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에서도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낮추기 위한 공조 시스템이 필수다. 1918년 설립된 플랙트는 데이터센터, 박물관·도서관, 공항·터미널, 대형 병원 등 다양한 시설에 고효율 공조 설비를 공급해왔다. 연매출은 7억유로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생성형 AI, 로봇, 자율주행, 확장현실(XR) 등의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 수요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글로벌 톱 티어 공조 업체 플랙트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회사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부문 공조 시장은 2024년 168억달러에서 2030년 441억달러로 연평균 1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삼성전자는 가정과 상업용 시스템에어컨 중심인 ‘개별공조’ 사업을 벌였다. 플랙트 인수를 통해 대형 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공조’ 사업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진입장벽이 높은 데이터센터 공조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 선도 기업 인수를 택한 것이다. 회사는 ‘글로벌 종합공조 업체’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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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라이벌인 LG전자와는 시스템에어컨에 이어 중앙공조 시장에서도 맞붙게 됐다. LG전자는 2030년까지 공조 사업 규모를 현재의 2배 수준인 20조원으로 키워 글로벌 톱티어 종합 공조업체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공조 사업을 담당하는 ES사업본부를 신설했다. 협업 관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센터에 LG전자 냉각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합의하는 등 기업 간 거래(B2B) 공조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주력인 반도체 사업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이번 인수가 미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자회사 하만 인터내셔널을 통해 미국 마시모 오디오 사업부를 3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M&A를 통한 사업 확장 방침을 밝혀온 만큼 추가 투자나 M&A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