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스캔 때 눈 깜빡이기 등 요구
‘장애인 원천 배제’ 논란 잇따르자
중국 정부, 내달부터 새 규정 시행

관씨의 신분증. CCTV 공개
중국의 80대 시각장애인이 통신사 대리점에서 얼굴정보를 전자시스템에 등록하지 못해 본인 명의 휴대전화 개통에 실패했다.
14일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장쑤성 양저우시 주민 관모씨(80)는 이달 초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통신사 대리점을 찾았다. 관씨는 신분증만 있으면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리점은 안면인식을 요구했다. 신분증 속 인물과 소지자가 동일인인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관씨는 생후 8개월 때 눈에 이상이 생겨 안구를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이 때문에 안면인식 기계의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관씨는 “유심카드를 신청하려면 얼굴을 스캔해야 하는데, 눈을 뜰 수도 깜빡일 수도 없다”고 말했다. CCTV가 관씨의 동의를 받아 공개한 신분증에도 눈을 감을 채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대리점 측은 안면인식과 관련해 ‘대포폰(명의를 도용당한 휴대전화) 개설 방지를 위한 필수적인 절차’라고만 설명했으며, 관씨와 같은 특수한 이용자를 위한 다른 인증방식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고 CCTV가 전했다. 관씨는 결국 사위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했으며, 통신사 고객센터에 항의해 이 사건이 알려졌다.
안면인식을 통과하지 못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녔다. CCTV는 관씨에게 휴대전화를 개설해주지 않은 대리점 주변에서 취재한 결과 어떤 대리점에서는 장애인증명서만으로도 휴대전화 개통이 가능했고, 또 다른 대리점은 기록용으로 얼굴 사진만 찍으면 되며 얼굴 등록은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문제가 된 대리점 측이 관씨가 신분증의 실제 주인이라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피한 것이다.
신원인증 수단으로 안면인식이 일상화된 중국에서도 이 기술이 장애인을 원천 소외시킨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CCTV는 지난해 4월 ‘심층관찰 - 안면인식에 갇힌 특수 집단’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얼굴에 화상을 입었거나 뇌성마비, 알츠하이머, 안면마비,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안면인식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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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2023년 9월 노인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한 ‘무장애환경건설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안면인식으로 보안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강고하고, 업무 담당자들이 실무 지침을 문자 그대로 따르거나 규정에 없는 내용은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것도 문제에 일조했다.
중국은 다음 달 1일부터는 ‘안면인식기술 적용 보안관리 조치’를 정식 시행한다. 규정은 업무의 요구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기술이 있는 경우 안면인식을 유일한 방법으로 제안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장애인·고령자의 얼굴 정보를 처리할 때 이용자가 편리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규정을 준수하고 최소한의 필요성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도 규정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