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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간을 기록해온 사진관의 역사와 추억…‘사진관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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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을 못한 사람들이 드레스 입고 사진이라도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식장 그만두고도 갖고 온 거에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4일 개막한 '사진관 전성시대'는 삶의 순간을 기록해온 동네 사진관 사진사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물건을 모은 전시다.

전시에선 삶의 순간을 기록해온 동네 사진관 사진사들의 이야기, 그들이 사용한 물건을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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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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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간을 기록해온 사진관의 역사와 추억…‘사진관 전성시대’

예식을 못한 사람들이 드레스 입고 사진이라도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식장 그만두고도 갖고 온 거에요. 이제 없애야 할 것 같아. 쓰지 않으니까.

- (현대사진관 사진사)

중학교 졸업 앨범을 아버지 때부터 해왔어요. 작년이 70회였으니까. 1회부터 70회까지 했네요.

- (가업을 이은 사진관집 셋째 아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동네 사진관은 삶의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던 곳이었다. 이 순간들의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됐고, 사진관은 그 기억과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4일 개막한 ‘사진관 전성시대’는 동네 사진관 사진사들의 이야기와 물건, 사진 20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궤짝 사진관(2010년 재현, 세로 48㎝ 가로 87.5㎝ 높이 99㎝)은 각종 증명사진을 10분이면 만들어 주는 거리의 속성 사진관이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란민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증명서가 필요해지자, 사진사들은 궤짝으로 암실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궤짝 사진관(2010년 재현, 세로 48㎝ 가로 87.5㎝ 높이 99㎝)은 각종 증명사진을 10분이면 만들어 주는 거리의 속성 사진관이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란민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증명서가 필요해지자, 사진사들은 궤짝으로 암실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전시에선 삶의 순간을 기록해온 동네 사진관 사진사들의 이야기, 그들이 사용한 물건을 함께 소개한다. 70년 가업을 이어온 사진관집 셋째 아들, 열일곱부터 54년간 한 길을 걸어온 사진사, 자전거 타고 동네를 기록한 52년차 산동(경남 창원시 소재) 사진사의 이야기를 통해 사진관에 대한 기억을 전하고 그 변화를 돌아본다.

사진사는 늘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피란민이 늘어나며 신분 확인을 위한 도민증을 발급받으려는 사름들로 전국 사진관은 호황을 맞게 됐다. 각종 증명사진을 10분이면 만들어주는 속성 사진관이라 할 수 있는 ‘궤짝 사진관’이 이때 등장했다. 갖가지 풍경이 그려진 배경판과 소품들을 리어카에 싣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이동 사진관도 있었고, 관광지와 입학식·졸업식에선 늘 거리의 사진관을 만날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삶의 특별한 순간에 찾던 동네 사진관은 사라지고, 무인 즉석사진관 등 새로운 형태의 사진관이 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이 늘면서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는 새로운 사진관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시에서 오랜 시간 사진관을 지켜온 사진사는 사라져가는 동네 사진관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진관이 없어지는게 아니에요. 젊은 사람들이 잘하고 있잖아요. 다른 사진관인거지.”

전시는 14일부터 오는 7월27일까지.

유리건판필름(대한제국, 세로 16.4㎝ 가로 12㎝)은 1880년대부터 사용된 초기 카메라 필름으로, 유리 위에 젤라틴 유제(乳劑)를 발라 만들었다. 한 번 사용한 뒤에도 필름 표면의 유제를 없애면 다시 쓸 수 있었다.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유리건판필름(대한제국, 세로 16.4㎝ 가로 12㎝)은 1880년대부터 사용된 초기 카메라 필름으로, 유리 위에 젤라틴 유제(乳劑)를 발라 만들었다. 한 번 사용한 뒤에도 필름 표면의 유제를 없애면 다시 쓸 수 있었다.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천연당사진관의 여성 사진(1920년대, 세로 13.2㎝ 가로 9㎝, Joseph H. Owens기증)김규진(1868~1933)이 운영한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에서 촬영한 초상 사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천연당사진관의 여성 사진(1920년대, 세로 13.2㎝ 가로 9㎝, Joseph H. Owens기증)김규진(1868~1933)이 운영한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에서 촬영한 초상 사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송별 기념사진(1906, 세로 12.5㎝ 가로 18.2㎝). 사진 속 사람들이 들고 있는 액자에는 사진을 찍은 날짜와 이유가 적혀 있다. 1907년 4월 민충식이 해외로 떠나기 전에 친구 김유원, 이민녕, 이익녕과 함께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민충식은 훗날 낙원동 태평양사진관의 주인이 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송별 기념사진(1906, 세로 12.5㎝ 가로 18.2㎝). 사진 속 사람들이 들고 있는 액자에는 사진을 찍은 날짜와 이유가 적혀 있다. 1907년 4월 민충식이 해외로 떠나기 전에 친구 김유원, 이민녕, 이익녕과 함께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민충식은 훗날 낙원동 태평양사진관의 주인이 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930년대~1970년대 찍힌 사진 모음. 사진관에서는 탄생을 기념하는 순간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930년대~1970년대 찍힌 사진 모음. 사진관에서는 탄생을 기념하는 순간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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