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14일 국회 앞에서 열린 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대통령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되자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 7명 가운데 여성 후보가 한 명도 없다. 2007년 17대 대선 이후 처음이다. 그런 선거인지라 대선 주자들이 여성을 대변해야 할 책임이 더 무겁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런 기대를 하기 난망해졌다. 후보들의 공약에서 ‘여성’은 뒷전이다. 윤석열 탄핵 광장을 뜨겁게 지키고 세상 변화와 성평등을 갈망하던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는 벌써 잊은 것인가.
주요 정당 대선 후보들이 지난 12일 발표한 ‘10대 공약’을 보면, 성평등·여성 정책 공약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공약엔 여성 공약을 별도로 발표했던 2022년 대선 때와 달리 ‘성평등’이란 말이 없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되레 후퇴한 공약을 내놨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3년 전 윤석열 대선 후보가 일곱 글자 공약으로 공지한 ‘여성가족부 폐지’를 다시 내놓았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만 여성 정책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이재명 후보가 여성 의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군복무 호봉 반영 공약’이 여성 차별이라는 문자에 “출산가산점”이라는 해괴한 답을 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선대위에서 배제됐다. 배현진 의원에게 “미스 가락시장”이라는 언사로 구설에 오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역시 여가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보수 후보들이 또다시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표 갈라치기를 골몰하고 있다니 참담하고 대선 후유증도 우려된다.
이번 대선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면서 ‘여가부 폐지’를 공약하고, 끝내 새만금 잼버리 사태 후 여가부를 장관이 공석인 ‘식물 부처’로 만든 윤석열이 파면돼 치르는 선거다. 그러잖아도 윤석열 정부 집권 1년여 만에 ‘국가성평등지수’는 사상 처음 뒷걸음쳤다. 유리천장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이고 남녀 임금 격차가 여전히 큰 데서 보듯 구조적 불평등도 심각하다. 딥페이크 같은 성폭력이나 여성의 안전도 여전히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12·3 불법계엄 사태 때 광장에선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출했다. 대선 후보와 각 정당은 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이들이 열망하는 성차별 없는 세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후보들은 선거공학 논리로 여성 의제를 외면하거나 역주행하지 말고, 가뜩이나 윤석열 정부에서 후퇴·방치된 여성 정책을 보완·신장하는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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