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중촌초등학교에서 수원애(愛)통통봉사단원들이 양말목 카네이션을 만들어 선생님에게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년 5월15일 ‘스승의 날’이면 일부 학교는 단축 수업을 한다. 옛 스승과 제자가 만날 수 있도록 여유를 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모든 교사가 이런 여유를 즐기지는 못한다.
지난달 28일 공립학교 교사들이 모여 있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스승의 날에 단축수업하면서 예전 학교로 선생님 찾아가라고 말아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씨는 “우리 학교는 단축 수업을 안 한다. 수업뿐만 아니라 업무가 많은데 우르르 학생들이 찾아온다”며 “이번 스승의 날엔 6교시 이후에 바로 조퇴를 하고 교무실 안 들르고 바로 집에 가야겠다”고 적었다. 이 글에는 동조하는 댓글이 90개가량 달렸다.
졸업한 제자를 만날 때 반가워하지 않는 교사는 거의 없다. 대전의 중학교 교사 하경신씨는 14일 “옛 학생들이 찾아오면 참 귀엽고 고맙다. 오늘과 이번 주말에도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업 외 업무에도 시간을 내줘야 하는 교사들은 옛 제자들을 웃으며 반기지 못하기도 한다. 대전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국모씨는 “기억하고 찾아와주는 학생들이 고맙지만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며 “수업 준비 말고도 여러 행정 업무로 정신없는 와중에 학생이 찾아오면 곤란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에서 5년째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고모씨(27)는 “스승의 날이지만 방과 후에 수업준비를 해야하는 건 마찬가지이니 부담되는 부분이 있다”며 “다음날 수업 준비를 두 시간 내내 해도 촉박한데 졸업생들이 몰려오면 수업 준비가 밀리고 퇴근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하경신씨도 “사전에 약속을 잡고 오는 경우는 괜찮지만 갑자기 몰려올 때는 정신없고 힘들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른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제자들은 기꺼이 만나기 어렵다는 토로도 있었다. 경기 지역에서 9년째 중학교 교사로 일하는 이모씨(36)는 “(옛 제자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보내서 왔거나 재미있는 일을 찾으러 놀러 오는 경우가 많아 내가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특성화고나 몇몇 특목고는 신입생 모집을 위해 (학생들의 예전 학교에)공문을 보내서 일정을 잡는다. (옛 제자도) 심드렁한 얼굴로 확인서를 (써달라고) 내미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고씨는 “(제자들이) 그냥 의무감에 오는 느낌도 있다”며 “중학교에 진학한 제자의 고민상담을 해줘야 하는데 에너지 소모가 꽤 크고, 생활 지도의 연장선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기도 한다. 고씨는 “학생들을 빈손으로 보내는 게 마음에 걸리다 보니 식사나 간단한 음료, 하다못해 작은 간식이라도 챙겨줘야 하는데 부담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간혹 오랜만에 찾아온 학생이 ‘저희 왔는데 이것 정도는 사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뭐 안 사주세요?’라고 말하면 화나고 허탈하다”고 말했다.
- 사회 많이 본 기사
그래도 졸업생들에게 활짝 문을 열어둔 학교가 더 많다. 14일 충남의 한 특성화 고등학교에는 졸업생 3명이 학창시절 교과 전담 교사를 만나러 왔다. 모두 서울에서 일하지만 쉬는 날을 맞춰 차로 2시간 넘게 걸리는 모교를 찾았다. 전모씨(24)는 “일 시작하기 전에는 1년에 두 번씩 왔는데 요즘엔 줄여서 1년에 한 번만 찾는다”고 했다.
특성화고는 미용, 조리 등 전담 교사들이 실무 경력이 있어 졸업생들이 힘들 때 조언을 구하고 위로를 받는 일이 적지 않다. 이날 졸업생 3명을 맞이한 교사 권모씨(43)는 “교사와 제자 관계지만 함께 실습을 오래 하다보니 같은 업계 동료 선후배 같은 느낌도 받는다”며 “잊지 않고 찾아주는 졸업생들이 고맙고 늘 반갑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