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입시에서도 의대 열풍이 휩쓸었다. 대학입시 관심은 온통 의대 이슈로 채워졌다.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추가 합격 연쇄 이동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입시였다. 이러한 현상적인 문제 외에도 의대 열풍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성격이나 파장으로 볼 때 국가가 망해가는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우수 인재 배분의 문제다. 세계 경쟁이 치열해지고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각 분야에 우수 인재가 필요하다. 의료 분야에만 우수 인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인공지능(AI)·공학·농업·경제·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필요하다. 각 분야 우수 인재들이 골고루 역할을 해야 국가의 균형 잡힌 발전도 가능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대의 우수 인재 싹쓸이가 벌어졌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 전반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나.
둘째, 교육 생태계의 교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의대 열풍의 폐해는 단지 입시 과정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공대 합격생 중에 열등감에 빠진 학생이 많다고 한다. 의대에 진학하지 못한 열등감이다. 다시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대학을 다니면서 반수, 재수, 삼수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대 공부가 제대로 될 수 있겠나. 의대 열풍은 우리나라 대학 교육을 갉아먹고 있다. 공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계열, 인문사회계열 학생들마저 의대 열풍에 뛰어들고 있으니 그 악순환의 파장이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대학 교육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셋째, 의대 열풍이 매우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에 지원하는 풍조가 만들어졌다. 고교 최상위 성적 학생은 당연히 의대를 지원하는 풍토다. 수능 만점자가 의대 대신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했다는 것이 뉴스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다. 물론 의대에도 우수한 인재들이 가야 한다. 그런데 우수하다고 무조건 가는 것이 아니라 의학에 대한 소질과 적성에 맞아야 한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 의학 분야에 소질과 적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소질과 적성을 따지기도 전에 공부 잘하면, 우수하면 일단 의대에 지원하게 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넷째, 고등학교 교육마저 파행시키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올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전면 도입됐다. 다양한 선택 과목을 통해 본인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하고 그에 맞추어 대학이나 진로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그런데 지금 같은 풍토에서는 상당수 학생, 특히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입시에 유리한, 점수 따기에 좋은 과목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상위권 학생들의 이런 행태는 고교 교육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가 입시에 유리한 수단을 찾는 과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의대 열풍은 그 어떠한 교육개혁도, 창의성 교육도, 인성 교육도, 미래융합 교육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괴물 용광로가 됐다.
의대 열풍은 의사가 돼 혜택을 누리는 소수에게는 꽃길이 될 수 있지만, 대다수 국민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더군다나 국가의 미래마저 암울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교육당국과 관계자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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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대책이 필요한데 찾기 어려우니 임시방편 대안만 내놓거나 거의 손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사이에 폐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고 교육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으며 국민 고통은 쌓여가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심각한 게 의대 열풍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원적인 대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정부당국뿐만 아니라 연구자들, 관계자들, 국민 모두 힘을 모아 해결책을 마련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국가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김병찬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