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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발붙이고 사는가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이 겹친 지난 연휴, 모처럼 엄마와 시간을 보내려 고향 집에 내려갔다. 이튿날, 어린이날 선물을 잔뜩 기대했을 조카로부터 “고모, 우리도 이제 할머니 집으로 출발해요” 하는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외사촌 오빠였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인사라도 하려나 싶어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는 엄마는 내게 곧 큰외삼촌의 부고를 전했다.

장례식장에서는 일가친지들이 반갑지만 반가울 수만은 없는 해후를 하고, 고인과의 추억을 하나둘 꺼내 울고 웃으며 놀라고 슬픈 마음을 덜어내려 애를 썼다. 장례를 처음 경험하는 어린 조카들은 통곡을 하다가 뒤돌아 정담을 나누고, 또 한순간 눈물짓는 어른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카들에게 누군가 세상을 떠나 슬픈 것도,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웃는 것도 모두 자연스럽고 따뜻한 애도의 방식이라 일러주며 나도 어른들 틈에서 큰외삼촌과의 추억을 보탰다.

고2 여름방학 시작 무렵, 나는 절에 들어가겠노라 선언했다. 머리를 깎겠다는 비범함은 아니었다. 심신을 잘 다스려 수능 준비에 더욱더 정진하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단짝 친구와 학창 시절 풋풋한 추억을 남기고 싶었던 게 본심이었다. 마침 나의 외가는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시골 마을인데, 그 외진 마을 끄트머리에 비구니 한 분이 머무는 절이 있었으니 얼마나 마침한가. 버스를 타고 외가에서 가까운 면 소재지까지만 가면 될 일이었다. 나머지는 큰외삼촌께 기대면 됐으니까.

지금도 외가는 ‘정미소집’으로 불린다. 외할아버지께서 시작한 정미소가 아랫대로 이어져 1990년대까지 유지됐다.

7남매의 맏이로 농사를 짓고, 정미소 일도 도맡았던 큰외삼촌은 언제나 곁에 있는 이들을 다독여 아우르는 분이셨다. 때마다 쌀이며 사과며 땀 흘려 거둔 것을 기꺼이 나누어주셨던. 가족 누구의 말에도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셨던. 외가 마당에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나는 줄곧 그 나무와 큰외삼촌이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다 좋을 수 있겠나, 어른들의 사정은 또 다를 테니. 그러나 어린 내 눈에 큰외삼촌은 호방하고도 정 깊은 어른이었다.

“데려다주세요.” “데리러 와주세요.” 그뿐이었겠나. 절에 애들 부탁도 해야지, 잘들 지내는지도 들여다봐야지, 지금 생각하면 한창 농번기에 참 민폐였다. 그런데도 큰외삼촌은 언제고 “그래, 그래” 하고 바람처럼 달려와 “어이!” 하고 손짓하셨다.

그때 그 시절 기행을 함께했던 친구에게 큰외삼촌의 부고를 알리자 20년도 더 된 일이라 절에서 지낸 낱낱의 시간들은 희미한데도 외갓집 앞으로 우거진 나무와 정미소, 그리고 큰외삼촌의 인상은 스틸컷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고 해서 마음이 다시 뭉근해졌다.

이제 외가에 그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없다. 몇해 전 건물 3층 높이까지 자라 저 혼자 숲을 이룬 나무가 집을 상하게 할 염려가 있어 부득이 없애게 됐다. 못내 아쉬워하다가 혹시나 하고 포털사이트의 지도 서비스에서 거리뷰를 검색했다. 2011년 10월과 2014년 7월에 촬영된 두 컷이 나왔다. 나는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외가 전경을 캡처해 엄마에게 보내고, 그 아래에서 보냈던 날들의 촉감을 나누었다.

큰외삼촌은 화장 후 가족묘에 안장됐다. 당신께서 나고 자라 평생을 보낸 정미소 앞,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그곳에. 먼 길을 떠나셨지만 조금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큰외삼촌을 기리며 나는 내가 어디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세계의 일부라면 분명 내게도 나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꼭 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를 생각할 때 함께 떠올리게 될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디에 서 있고, 그곳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그곳에서 나는 행복감을 느끼고, 그만큼의 행복감을 전하는가.

작별에 이르러서도 살며 놓치지 않아야 할 물음을 되새기게 해준 나의 큰외삼촌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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