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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진짜 모르는 정치인은 누굴까

청년들이 말하는 한국 정치는

거대 양당의 밥그릇 싸움일 뿐

1순위 공약과 구호 매번 똑같아

현실이 무엇인지 정말 묻고 싶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반국가세력은 무엇이었나.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며 계엄을 선포한다고 했을 때, 국가정보원이 대규모 간첩단이라도 포착했나 싶었다. 계엄 선포 전후 변명처럼 덧붙인 발언 어디에서도 그런 건 없었다.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간첩’이라는 단어만 25번 들었을 뿐이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은 그 세계관을 파헤치기 위해 윤 전 대통령이 영향을 받았다는 이른바 ‘극우’ 유튜버 채널 12개의 영상 600개를 수집해 분석했다.

흩어진 말들을 겨우 긁어모아 보니 그들이 말하는 ‘좌파’ 혹은 ‘간첩’이란 중국, 북한, 민주노총,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당시 대표 등을 뭉뚱그린 말이었다. 윤 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머릿속에서 민주당과 좌파언론은 민주노총이 장악하고 있고, 민주노총은 좌파 세력과 북한, 중국의 지령 아래 움직인다. 짧은 경험으로 미뤄볼 때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필시 그건 ‘좌파’ 세력은 아닐 거다. 민주노총과 민주당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좌파’ 세력은 모두들 조금씩 입장과 의견이 다르다. 중국과 북한을 싫어하는 ‘좌파’들도 많다.

윤 전 대통령과 ‘극우’ 유튜버들의 엇나간 인식은 20세기 미국 정치평론가였던 월터 리프먼이 <여론>에서 지적한 현대사회의 모순을 떠올리게 한다. 근거리의 친밀한 관계가 현실의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현대인은 대부분의 주어진 현실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하나의 국면과 양상뿐이다. 사람들은 손 닿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각자 머릿속에 만들고, 실제 세계가 아닌 허구의 세계 속에서 산다. 그 사이를 고정관념과 편견, 선전과 선동이 비집고 들어온다. 우리가 사실로 믿는 대부분은 판단이나 해석이다. “우리는 우선 보고 그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의부터 하고 그다음에 본다”는 말은 그들에게 딱 들어맞는다.

리프먼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선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론 조작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닫고 <여론>을 썼다. 사람은 부분적으로 비슷한 것을 쉽게 동일시한다. “유니언 리그 클럽(미국의 보수 엘리트 단체) 회원들에게는 민주당원, 사회주의자, 그리고 도둑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그가 남긴 20세기 초의 묘파는 오늘날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가 나쁘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나쁜 사람을 본다.” 반대편은 “악당과 음모가로 취급”하며 “만일 박빙의 선거에서 진다면, 정치적 부패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리프먼의 생각은 민주주의의 본질, 이상에 대한 의문에까지 가닿는다. 시민들은 유권자로서 알 수 없는 세계,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제에 관해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받는다. 이는 민주정치를 삐걱거리게 만든다. 더욱이 이태원 참사도 산불도 모두 ‘좌파’ 탓이라며 내란을 부추기고 옹호한 ‘극우’ 유튜버들, 법원을 습격한 이들까지도 과연 시민으로서 존중받을 자격이 있을까.

리프먼은 비관적이었지만, 그 시각을 오늘날 모든 시민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근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이 진행한 20~30대 청년 100명의 인터뷰를 읽었다. 청년들은 계엄과 폭동 사태를 잘못됐다 하면서 동시에 민주당도 똑같이 비판했다. 한계는 있지만 분명 시민들은 현실에 좀 더 가닿고 있다. 탄핵 과정에서의 집회와 연대 양상을 살펴보면 더 그렇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도 정치를 “거대 양당 체제의 밥그릇 싸움”일 뿐이라고 하면서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양당 대선 후보들은 경제 강국,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1순위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러분의 자녀도 나처럼 될 수 있다는 후보도 나왔다. 수십 년간 변하지도 않는 구호와 매번 똑같은 전통시장 방문이 지겹기도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정말 그것인지 묻고 싶다. 윤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진짜 그들이 보는 세계가 그렇게 편협할지 모른다는 것이 무섭다. 김문수 후보는 ‘극우’ 유튜버들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어쩌면 첫 일정으로 고공농성장을 찾은 후보처럼, 현실을 모른다고 치부받는 정당과 정치인이 가장 우리 현실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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