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공개 회동을 생중계로 보던 지인이 “참으로 진귀한 볼거리”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단일화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한덕수에게 김문수가 ‘어디서 나온 거냐’ ‘왜 입당하지 않는 거냐’고 하더라며 “김문수가 한덕수를 갖고 노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김덕수 단일화’를 약속하고도 입을 씻은 김문수이지만, 그보다는 대선에 무임승차하려는 한덕수의 기회주의적 처신이 훨씬 밉상이었던 모양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지인들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관련 속보가 속속 올라왔다. 그 뒤에는 어김없이 ‘한덕수가 제일 나쁜 X’라는 식의 반응이 이어졌다.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이슈는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거기에는 배신, 모략, 개연성 없는 반전, 돌연한 역할 전도와 같은 막장 드라마의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누군가는 욕하면서 왜 막장 드라마를 보냐고 하지만, 사람들은 욕하려고 막장 드라마를 본다. 욕 나오는 상황이야말로 막장 드라마의 본질이다. 사람들은 거기에 대고 욕하면서 자신의 윤리 감각이 정상임을 확인한다.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막장극을 지켜본 사람들 심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 칭하는 자칭 호남사람 한덕수는 난데없이 새된 소리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인류애를 호소했다. 이 무의미한 음성에 합당한 반응은 욕일 수밖에 없다. 12·3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시종 옹호하더니 자신의 후보직 박탈 시도는 ‘정치 쿠데타’로 규정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도 부를 기세로 농성한 김문수, 그런 김문수를 두고 “전형적인 좌파형 노선투쟁의 답습”이라고 등에 칼을 꽂은 김문수 캠프 핵심 의원의 행태는 어떤가.
압권은 후보 교체 쿠데타를 주도한 원내대표 권성동의 처신이다. 단일화를 촉구하며 며칠 단식한 그는 김문수더러 “알량한 후보”라고 하더니 정치 쿠데타가 실패하자 “다 묻자”며 “김문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정권 창출을 위해 매진하자”고 했다. 김문수는 그런 권성동에게 ‘이제 원팀’이라며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겼다. 이 장면은 무엇 하나 맺고 끊지 못하는 이 당의 속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찬찬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12·3 내란처럼 정치 쿠데타도 어물쩍 넘기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쿠데타 세력이 계속 자리를 보전하면 그 쿠데타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한 것”이라는 한동훈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그러니 극우의 지지마저 시들해진 윤석열이 물귀신처럼 국민의힘을 내란의 강에 묶어두려 준동하는 것이다. 정치 쿠데타 배후로 의심받는 윤석열은 한덕수가 낙마하고 김문수가 후보로 확정되자 페이스북에 올린 ‘국민께 드리는 호소’ 제하의 글에서 “우리의 싸움은 내부가 아니라 자유를 위협하는 외부의 전체주의적 도전에 맞서는 싸움”이라며 김문수 지지를 호소했다. 김문수는 윤석열 출당을 거부했고, 윤석열 친구인 내란 옹호자 석동현을 선대위 시민사회특별위원장에 임명했다. 12·3 내란 세력, 정치 쿠데타 세력이 국민의힘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으로 무너졌으나 그릇된 유산과 단절하지 않았다. 잘못을 직시할 용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결단을 대체한 건 눈앞의 상황만 모면하려는 조악한 꼼수와 기회주의였다. 기회주의는 이 당의 기풍이 되었다.
이 당 주류는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불참했고, 윤석열 탄핵소추에 반대했고, 윤석열 파면에 반대했다. 이준석을 내쫓고 나경원을 주저앉히고 한동훈을 끌어내리더니 김문수를 한덕수로 갈아치우려 했다. 황교안에서 윤석열로, 윤석열에서 한동훈으로, 한동훈에서 한덕수로 쉼 없이 간판을 바꾸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총선 참패, 내란 반대 물결에도 민심과 엇나갔다. 그러면서 ‘윤석열 탄핵안이 기각되면’ ‘한덕수를 후보로 내세우면’ ‘김문수·이준석 단일화에 성공하면’ 하는 식의 요행수만 끝도 없이 바란다. 도박꾼식 한탕주의다. 이 모든 게 오로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사욕의 발로이다.
정당은 헌정질서를 지키고, 정당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고, 민심에 반응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이 모든 걸 어겼다. 그런 당이 망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국민의힘이 살기 위해 할 일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와 반대로만 하면 된다. 골수에 박힌 기회주의 근성부터 도려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당은 어떻게 자멸하는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정제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