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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빛을 들이는 스승

5월15일, 스승의날이다. 스승이란 제자를 가르쳐 바른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몰랐던 사실을 깨치도록 이끈다는 것은 계몽한다는 말과도 같다. 계몽은 어두울 ‘몽(蒙)’에 열 ‘계(啓)’ 자를 쓴다. 흔히 사리에 어두운 상태를 벗어나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끔 계도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이를 꼭 지식의 영역에 국한해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어둠에 덮여 있던 생각을 열어젖히는 행위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늘진 마음에 한 점 빛을 비출 수 있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이 아닐까 싶다.

영화 <굿 윌 헌팅>(1998)에는 청년 ‘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두 교수가 등장한다. 수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능통한 청소노동자 윌의 천재성을 알아본 수학과 교수 ‘램보’는 경찰을 때려 실형을 선고받은 그를 찾아간다. 램보는 윌에게 석방을 도와줄 테니, 매주 한 번 자신과 만나 수학 문제를 함께 풀고 상담사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제안한다. 윌은 이에 응하지만, 수학적 증명 작업에는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심리치료에는 비협조적으로 군다. 조롱 섞인 무례한 말들을 내뱉는 그에게 질린 심리상담사들은 줄줄이 상담을 포기한다. 그러자 램보는 자신의 대학 동기이자 심리학 교수인 ‘숀’에게 그를 부탁한다.

고아였던 윌은 입양과 학대로 인한 강제 파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마음을 다친 상태다. 양부가 휘두른 칼에 찔리기까지 했던 윌에게, 숀은 가까이 다가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열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다. 이미 자신도 알고 있으니 그만 말하라고 소리치는 그에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소 익히는 것은 아주 다른 차원임을 알려주려는 듯, 그 말을 되풀이한다. 숀은 전문적인 분석 결과를 들이미는 대신, 윌이 꼭 들어야 했던 진실이자 위로를 안겨준다. 매사 반항적이었던 윌은 비로소 그를 껴안고 울면서 자신의 약함을 내보인다.

숀이 건넨 다정한 말보다 중요한 것은 숀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숀은 세상의 기준과 어긋나더라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켜온 사람이다.

윌은 닮고 싶은 삶을 사는 숀을 보며, 자신이 희망하는 삶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버려지는 게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거리를 두고 무엇에도 도전하지 않는 방어적인 삶을 살던 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찾아 떠난다.

윌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으로서 램보가 하려던 일은 윌이 학문과 인류에 기여할 수 있게 지도하는 것이다. 램보는 자기가 풀 수 없는 난제들의 풀이법을 알아내고 싶은 욕망과,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헛되이 쓰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데서 오는 고통을 윌에게 투사한다. 윌을 위하는 길이라고 확신하면서 그를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램보가 주목하는 것은 윌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지닌 재능인 셈이다. 반면, 숀은 윌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한다. 윌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자기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는 윌이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찾아 나서고 그만의 충만함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

각자의 삶은 고유하기에 살아가는 자세까지 가르쳐줄 수는 없다. 사람들이 품고 있는 그림자 역시 각기 다른 조도의 빛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생(先生)이라는 말의 함의처럼, 스승은 자기 기준에서 가치로운 삶을 먼저 살아내어 그 발걸음을 따라 환한 쪽으로 걷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닫힌 마음의 창을 열어, 내면의 어둠을 밝힐 수 있게 하는 참된 스승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찬란하도록.

성현아 문학평론가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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