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휴먼라이츠워치 “2034 월드컵 열리는 사우디서 건설업 이주 노동자 사망 사례 급증”

입력 2025.05.15 12:34

수정 2025.05.15 12:55

윤기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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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월드컵 입찰 전시회에 올라온 로셴 경기장 모형.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034년 월드컵 경기장 등 관련 공사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현지 건설업 이주 노동자들의 사망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와 페어스퀘어는 14일(현지시간) ‘ 사우디아라비아: 이주 노동자들의 일터 내 감전사, 참수, 추락사’ 보고서를 내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예방할 수 있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온열 질환, 낙상, 감전, 기계 끼임 등 다양한 원인으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지난 3월에도 동부 코바르의 아람코 스타디움 건설 현장에서 30대 중반의 파키스탄 노동자가 추락사한 일이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사례 가운데 상당수 사인이 자연재해로 잘못 분류돼 유가족에게 적절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페어스퀘어는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당국이 이주 노동자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족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고용주와 당국이 유족에게 사망 경위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았고, 일부 고용주는 송환 비용 부담을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사망한 이주 노동자의 유품 반환과 미지급 임금 지급을 미루고 있는 기업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한 지 7개월 방글라데시인 남편을 잃은 아내 A씨는 “남편이 (사망 전) 3층에서 벽을 부수려고 망치질을 하다가 떨어진 적도 있다”며 “그 자리에서 죽지는 않았지만 사고가 법적 문제가 될까 봐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고 연구진에 말했다.

배관공으로 일하다 사망한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의 아내 B씨는 “시신이 돌아오고 3개월 후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35만방글라데시타카(약 402만원)를 지원했다”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회사도 재정 지원을 안 했다”고 전했다.

밍키 워든 휴먼라이츠워치 글로벌이니셔티브 국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월드컵은 역대 최대 규모로 11개의 새 경기장과 철도 및 교통망, 18만5000개의 호텔 객실 등 건설에 수백만명의 이주 노동자가 투입되면서 인명 피해도 가장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임스 린치 페어스퀘어 공동이사는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생명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노동 시스템과 사망 원인을 규명할 능력이 없는 의료 시스템, 자신들을 보호하거나 사망원인을 파악할 의지가 없는 정치 시스템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제축구연맹(FIFA)의 인권 정책을 ‘엉터리’라고 혹평했다.

그는 “FIFA가 사우디아라비아를 극찬하고 서구의 법무법인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평판을 관리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동안 네팔과 같은 나라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숨졌는지조차 모른 채 자라게 된다”고 비판했다.

FIFA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월드컵 관련 시설 건설에 동원되는 노동자를 위한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해명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 제도가 어떻게 운용될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제공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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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라이츠워치는 “사우디아라비아 당국과 FIFA, 고용주들이 모든 이주 노동자의 죽음이 제대로 조사되고 유가족이 존엄하게 대우받고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발생한 이주 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도 비판했다. 카타르가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가혹한 노동 조건에 처한 외국인 노동자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