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가 지난해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반발해 교내 점거 농성을 벌인 학생들을 상대로 낸 고소를 6개월 만에 모두 취소했다. 학생들은 “학교가 다시 정상화되고 서로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이는 연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동덕여대 학교 측은 지난 14일 오후 재학생 19명에 대한 형사고소 취하서와 처벌불원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학교 측 관계자는 15일 “갈등이 장기화하고 확대될수록 학교 발전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양측에 형성됐다”며 “학교와 학생 간 관계가 보다 원활해지고 소통의 틀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학교 측에 ‘학내 구성원들이 받은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감을 표명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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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 운동장에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놓은 ‘학과 점퍼’가 놓여있다. 김서영 기자
앞서 동덕여대 일부 학생들은 지난해 11월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반발해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시설물에 래커칠을 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학교 측은 피해 금액이 최대 54억원으로 추산된다며 총학생회장 등 학생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SNS에 입장문을 내고 “민주주의가 지켜진 뜻깊은 순간이자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낸 중대한 승리”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교정에서 만난 재학생 김모씨는 “당연한 수순”이라며 “폭력 시위도 아니었고, 학교의 비민주적인 행정에 대해 학생들이 수차례 말했음에도 학교 측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래커칠을 한 것 아닌가. 이를 두고 학교가 학생을 고소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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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교정에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반발하며 학생들이 적은 대자보와 메시지 등이 붙어 있다. 성동훈 기자
학교 측의 고소 취소로 학생들이 법정에 설 일은 없어졌지만 모든 학내 문제가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학과 통폐합’, ‘학생 사망사고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 비공개 문제, 총장 횡령 의혹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아직 산적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부터 꾸준히 교내 시위에 참여했다는 A씨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시작”이라며 “학교 밖 사람들은 ‘해결됐네’라고 생각하겠지만 계속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이 학생들을 향한 혐오·공격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신입생 김모씨는 “(고소 취소로) 학교의 변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면서도 “사태 이후 학생들이 받는 혐오와 폭력적 발언·행위에 대해 학교가 좌시하지 않고 학생들을 보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교내 시위 이후 학생들은 지금까지도 혐오·공격에 떨고 있다고 한다. SNS에는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20대 남성이 한밤중에 교내에 무단 침입해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덕여대 학생이라는 것을 숨기고 다닌다는 신입생 박모씨는 “아르바이트 동료들도 ‘(학생들이) 페미(니스트) 집단이다’ ‘학교에 뭐하러 래커칠까지 하냐’는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다만 남녀 공학 전환에 대한 의견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갈렸다. 김모씨(21)는 “처음에는 여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가족과문화 수업을 듣고 페미니즘적 문제를 논하는 것이 학교 밖 사회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런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여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B씨도 “남녀차별에 맞서 여성 인권을 높이기 위해 여대가 만들어졌다. 그 역사를 남기는 역할으로라도 여대는 남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C씨(22)는 “공학이 되면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학교 입결(입시결과)이 올라갈 수도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 편입으로 인한 학생 유출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가 몰래 공학 전환을 시도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김씨는 “공학 전환이 되든 안 되든 학교의 주체인 학생 몰래 일을 진행한 것은 분명 잘못”이라고 했다.
▼ 백민정 기자 mj100@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