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지난 8일 대구 수성구 대구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15일 서울시의회가 발의한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안’(기초학력 조례)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서울 초·중·고교에서 학교별 기초학력 데이터를 공개할 근거가 서울시교육청 조례에 마련됐다. 교육감 재량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긴 했지만, 학교별 성적 공개를 악용하면 기초학력 증진이라는 조례의 제정 취지를 달성하기보다 지역간 서열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초학력 조례의 쟁점 조항은 7조1항이다. 해당 조항에는 ‘교육감은 학교의 장이 시행한 기초학력 진단검사의 지역·학교별 결과 등을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교육청은 매해 3월초 서울 내 초·중·고교 1326교에서 기초학력 진단도구와 관찰·상담을 거쳐 기초학력 지원 계획을 수립한다. 현재 진단 결과는 학교만 알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기초학력 진단 결과 공개가 교육감 재량에 달려 있지만, 해당 조항을 근거로 정치권이 자료 요구를 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역구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이 지역 홍보를 위해 기초학력 진단 결과를 요구하고 활용할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기초학력 측정과 공개 범위는 교육계의 오랜 논쟁 대상이다. 최근 들어 학생의 학습수준을 파악하려면 기초학력 측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반면 기초학력 진단 결과의 공개는 연구용 등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하다. 학교별 기초학력 데이터의 공개는 학교간, 지역간 비교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세린 교사노조 사무총장은 “기초학력 데이터는 학력 부진학생의 학습을 돕고 연구나 정책수립를 위해 쓰여야 하는 것이지, 공개비교용으로 사용되면 줄세우기 등 부작용이 매우 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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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력 진단 결과의 공개가 기초학력 신장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대법원 이날 판결문에서 조례 취지를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그 관심과 참여도를 끌어올림으로써 궁극적으로 기초학력을 신장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학교별 기초학력 진단 결과를 공개하면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이후에는 학교간 경쟁 등을 통해 기초학력 신장으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정찬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정책실장은 “기초학력 부족은 정서적, 경제적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인데 성적만 지적하면 기초학력 부족을 일으킨 다른 요인들을 가리게 될 것”이라며 “기초학력 진단 대비반이 만들어지는 등 사교육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간 서열화나 특정 지역의 게토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법원은 “개별학교를 익명처리해 공개하면 서열화 폐해는 방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역에 따라 학급규모 등으로 학교명 추정이 가능하다는 반론이 늘 따라붙는다. 김승호 실천교육교사모임 대외정책실장은 “법원의 기대와 달리 기초학력 진단 결과 공개는 한국에서 자녀키우기 좋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나누는 차별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