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시간 보장·재접촉 금지 등 매뉴얼 안 지켜
가해자 측 계속 연락·민원···노조 “산안법 위반”
고객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할 뻔한 코웨이 가전제품 방문점검원이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책임을 다했는지 판단해달라고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는 12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웨이는 고객응대 종사자 보호 매뉴얼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성폭력 예방 및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민주노총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2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코웨이 방문점검원 성폭력 위협 사건’과 관련 고용노동부 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3년 차 코웨이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A씨는 지난해 9월20일 정수기 점검차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가 고객의 아들에게 성폭력 위협을 당했다. 가해자는 휴대전화를 뺏는 등 A씨를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 간신히 맨발로 뛰쳐나온 A씨는 경비실에 도움을 요청해 경찰에 신고했다.
코웨이의 고객응대업무 종사자 건강보호 매뉴얼을 보면, 문제 상황이 벌어지면 코디·코닥(방문점검원)이 이를 알리고 지국장·총국장이 일을 중단하라고 권고하게 돼 있다. 고객으로부터 폭언·폭력을 당하면 해당 코디·코닥에게 30분 이상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고객과 재접촉을 금지하거나 2인 1조로 동행해야 한다.
이 같은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다. A씨는 입장문에서 “사건 이후 회사로부터 즉시 업무 중단하라는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며 “사건 당일 오후에도 다른 고객의 전화, 가해자 가족의 연락, 가해자 가족의 콜센터 민원까지 감당했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가해자 아버지가 코웨이 콜센터에 ‘정수기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민원을 넣고 A씨 번호로 계속 전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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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2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코웨이 방문점검원 성폭력 위협 사건’과 관련 고용노동부 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그러나 코웨이 측은 “현장 조직장이 사건 당일 피해자에게 즉시 업무 중단을 안내했으며 피해자는 일부 점검 건을 직접 마무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일부 업무를 수행했다”며 “이후 현장 조직장이 재차 업무 중단을 안내했으며 피해자가 직접 점검 의사를 밝힌 건을 제외한 모든 점검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했다. 코웨이는 “피해자가 요구한 치료비 전액을 지급했고, 관련 소송 진행에 따른 변호사 선임시 수임 비용 지원에 대하여 피해자와 협의해왔다”고도 했다.
특수고용직인 방문점검원은 점검 건당 수수료를 임금으로 받기 때문에 점검 횟수가 줄어들면 곧바로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노조 관계자는 “유급 병가를 내면 급여라도 나오지만 특수고용직이라 그런 제도도 없다”며 “병원 치료비도 본인 돈이 나가는 것이라 A씨가 처음에 병원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나서야 회사가 연락을 해왔다. 병원 치료비를 내준다는 제안도 두 달이 지나서야 했다”고 했다.
노조는 코웨이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책임을 저버렸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77조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업무상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및 보건 조치를 사업주에게 의무화하고 있다. 오혜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 노무사는 “이번 사건은 업무상 재해로 충분히 평가될 수 있음에도 코웨이는 가해 고객과 분리조차 하지 않았고 피해자 업무 앱에서 가해 고객의 정보가 여전히 노출돼 있었다”며 “코웨이가 법적 보호 의무를 외면한 것이며 산업안전보건법 77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 탁지영 기자 g0g0@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