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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가 온다

병어가 온다. 모든 수산물이 어느새 한참 비싸졌지만 병어 떠 먹고, 저며 먹고, 뼈째 썰어 먹고, 지져 먹고, 조려 먹고, 쪄 먹고, 구워 먹고, 젓 담가 먹는 한반도 서남 바다의 일상생활이 어디 갈 리가 없다. 계절 따라 맵싸해진 무, 날빛 잔뜩 받은 애호박, 하지에 앞서 영근 감자는 병어조림과 병어지짐에 딱 맞다. 그러고 보니 전남 바다의 병어젓까지! 못 먹어봤으면 젓갈 말씀을 마시라. 이즈음 서남 바다 사람들은 병어 한입 달게 먹고 한여름 맞을 생심을 낸다. 병어와 함께 여름을 건넌다.

병어. 농어목 병어과에 속하는 어류다. 한국인은 일상생활에서 병어와 덕대(또는 덕자)를 아울러 병어라 이른다. 요즘은 학명이 다른 ‘중국 병어’까지 여기 뒤섞이곤 한다. 워낙 익숙한 반찬거리였는지라 그 이름도 여럿이었다. 오늘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병어의 한자어를 잡지 않는다. 그런데 옛 문헌에는 별별 한자 이름이 다 보인다.

목이 짧다(머리의 가로 길이가 짧다)는 뜻으로 ‘축항어(縮項魚)’ 또는 ‘축경편’이라고 했다. 무리 지어 다니는 병졸의 모습을 따서는 ‘병어(兵魚)’라고도 했다. 납작한 몸통을 편병(扁甁)에 견주어서는 ‘편어(扁魚)’라고 했다. 병 중에서도 납작하고 평평한, 딱 병어처럼 생긴 놈이 편병이다. 그러고 보니 옛 동래 왜관에서 오래 근무한 일본인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는 병어의 조선 한자어를 ‘병어(甁魚)’로 썼다. 이 또한 편병에 견준 말이겠다. 그는 여기다 “병어 입같이 작다”라는 조선어 표현을 덧붙이기도했다.

이름이야 아무려나 그 살은 실로 부드럽고 기름지고 고소하고 개운하고 깨끗하다. 영어권 사람들도 그 부드러움과 기름짐과 고소함을 놓치지 않았다. 병어의 영어 이름은 ‘버터피시(butterfish)’다.

그 풍미를 단박에 증폭하는 최고의 비결이 하나 있다. 된장이다. 맛이 폭 든 된장과 병어가 만나면 먼저 잇새에서, 이윽고 입안에서 그 살의 맛이 그야말로 폭렬한다. 된장 만난 병어의 살은 고소한 가운데 달콤한 풍미를 입안 한가득 채운다. 오감을 간질인다. 지방이 주는 녹진함 또한 된장을 만나면 한층 도드라진다.

‘맛을 밀어낸다’는 표현이 있다. 소금, 초, 레몬즙 따위를 뿌려 원물의 맛을 돋을새김하듯, 그야말로 도드라지게 증폭시킬 때 쓰는 말이다. 이때 소금에서 초에 이르는 ‘간’이 들척지근하다면 어찌 밀어내기가 가능할까. 맛의 열쇠, 간의 열쇠는 짠맛이다. 병어야말로 한국 된장의 호쾌한 짠맛을 쓰는 보람을 최단거리로 드러내는 먹을거리이다. 호쾌한 짠맛, 짠맛의 호쾌함을 지나서야 그다음도 있다. 병어의 살 앞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상쾌하게 맵싸한 겨자장, 꿀과 초로 우아한 풍미를 더한 초장, 시고 매콤한 사이에 짭짤함과 달콤함이 치고 올라오는 매력적인 초고추장 모두, 짠맛이 중심을 잡고 있을 때에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짠맛이 제대로, 제자리에 있을 때만 상추, 깻잎, 깻잎채, 들깨송이, 마늘, 마늘종, 풋고추, 김치, 묵은지, 백김치들로 더하는 병어 풍미의 변주에도 보람이 있다. 먹다 뱃속이 차갑다 싶으면 미나리 둔 옅은 된장국 한 사발 훌훌 마시면 그만이다.

병어가 온다. 장 뜨러 가야겠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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