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건너지 않고서야 무슨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내 겨울의 추위와도 같은 존재였지요
나는 당신의 추위 안에서 덜덜 떨며
한 번쯤 얼어붙은 시간을 반드시 건너와서야
이렇게 싹을 틔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추위 안에서 나는 안으로 안으로만 울면서
눈물 꽁꽁 얼려 꽃의 형상을 꿈꾸었습니다
내가 여름을 기다려 꽃 피우는 까닭을 당신은 아시겠지요
당신의 추위를 혼신으로 견디며 건너지 않고서야
어찌 한여름 이 높은 산정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추위는 내 여름날의 꽃으로 핀 사랑의 종말입니다
-시 ‘두메양귀비’, 안상학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 내일>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스물두 살 된 청년입니다. (중략) 우리들의 현실에 적당하게 만든 것이 바로 법입니다. 잘 맞지 않을 때에는 맞게 입히려고 노력을 하여야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윗글은 노동자 전태일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 편지 중 일부다. 전태일은 편지에서 하루 14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어린 여공들의 고통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썼다. 한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곳에서 먼지를 마시며 햇빛을 보지 못해 여공들이 앓고 있는 안질과 폐결핵에 대해서. 제때 제대로 밥을 못 먹어서 생기는 신경통과 신경성 위장병에 대해서도. 대통령에게 수신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전태일의 마지막 편지다.
“억울하게 3개월치 월급을 떼이고 이번엔 고무공장에 들어갔다. 거기서 빼빠(사포) 치는 데 들어가서 손바닥이 닳아 피가 나고 손에 지문이라곤 남지 않았다.”
윗글은 두메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년공이 된 대통령 후보 이재명의 일기 중 한 토막이다. 그는 열두 살에 목걸이 공장에서 연탄 화덕을 안고 납 연기 마시며, 하루에 12시간씩 납땜을 했다. 열세 살에 고무공장에서 검은 고무가루를 마셔가며 연마기로 고무기판을 갈아냈다. 공장에서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 연마기에 살과 손톱이 뜯기고 고무판과 함께 손가락이 떡이 되기도 했다. 피와 살과 새까만 고무가루가 뒤범벅된 채로 병원에 갔으나, 고무를 분리하지 못한 채 살과 함께 봉합되었다.
그는 열네 살에 냉동공장의 함석판을 절단하는 기계 앞에서 거의 매일 날카로운 함석 모서리와 단면에 손이 찍히고 찢겼다. 두 번은 손등이 드러날 정도로 깊이 베였으나 빨간약을 바르고 러닝셔츠 자락으로 갈라진 손등을 누른 채 서성이다 돌아와 다시 일했다. 열다섯 살에 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 만드는 공장에 들어갔다. 육중한 프레스 기계에 손목뼈가 깨졌다. 0.001초만 늦게 손목을 빼냈으면 한쪽 손목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선이 18일 남은 봄날 아침, 개양귀비꽃이 벌들의 식탁이 되었다. 만개한 꽃잎들 가운데로 벌들이 몰려들어 식사 중이다. 산정 높은 데서만 핀다는 두메양귀비가 아니라도, “덜덜 떨며” “얼어붙은 시간을” 지나오지 않은 꽃이 있겠는가. 백개의 흉터가 꽃이 되기까지, “안으로 안으로만 울면서/ 눈물 꽁꽁 얼려 꽃의 형상을 꿈꾸”는, “겨울을 건너지 않고서야 무슨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혼신으로 견”딘 겨울의 인고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여름의 길목, “당신의 추위는 내 여름날의 꽃으로 핀 사랑의 종말입니다”. 발 위가 발밑보다 비싼 세계와 헤어지겠다는 빛의 혁명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합체되는 기적 아닌가. 과거의 소년공에게 더 과거의 청년공이 걸어오고 있다. 전태일이 쓴 편지가 55년 후 또 다른 전태일에게 도착하고 있다. 과거는 곧 도래할 미래,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지금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김해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