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집권여당이었다. 스스로 주장하는 법통에 따르면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에다 최근의 윤석열까지 58년 동안 그랬다. 야당은 15년에 불과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연륜이 쌓이면 그에 맞는 격을 갖기 마련인데, 국민의힘은 거꾸로였다. 윤석열 내란을 옹호하고 탄핵도 반대했다.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주류가 그랬고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새벽 3시부터 한 시간 동안 후보등록을 받는 활극은 정당정치를 망가뜨린 폭거였다.
국민이 지켜보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이런 안하무인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식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국민의힘에 대한 합리적 접근과 분석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내란 이후 내내 그랬다.
국민의힘 사람들은 제 잇속만 챙기려 정치를 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이해관계다. 악담하던 사람과의 포옹도, 존경한다던 사람에 대한 욕지거리도 거리낌이 없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죄다 이렇다면, 우리에겐 망국의 길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국민의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때론 엉망진창이고,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정치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희망의 빛이 넘치는 광장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없다. 광장의 역할은 문제 제기일 뿐이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할 때 교정시설 재소자는 4만8000여명이었다. 이게 3년도 안 되는 사이 6만4500여명으로 부쩍 늘었다. 살인, 강도 등 중요범죄의 발생 자체가 현저하게 줄었고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치안을 자랑하는데도 이랬다. 범죄를 저질렀으니 감옥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어떤 범죄든 범죄자만의 탓인지 아니면 사회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인지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민사사건이 형사화하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가벼운 기초질서 위반을 범죄로 둔갑시키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또한 사회정책을 통해 범죄도, 범죄자의 숫자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같은 서방국가인데도 미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차이는 엄청나다. 미국은 인구의 1% 정도를 감옥에 가두고 있지만, 노르웨이·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0.01% 정도쯤 된다. 무려 100배 차이다. 미국인이 북유럽 사람들보다 100배쯤 더 악성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범죄도 감옥도 사회의 산물일 뿐이다.
윤석열 정권은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사람들 숫자도 많이 늘렸다.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끌려가는 치욕을 곱씹어야 하는 사람들은 2021년 2만1868명이었는데 2022년에는 2만5975명, 2023년에는 5만7267명으로 크게 늘었다. 감옥에 갇히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은 검사독재정권의 횡포 때문이었다. 부자 감세로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검찰 검거팀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벌금 미납자의 집과 직장을 쫓아다녔고, 사람을 찾으면 무조건 체포부터 했다. 일단 잡아 가두면 어떻게든 돈이 나온다는 거였다.
2007년.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의 경범죄처벌법 단속 건수는 7만7138건이었다. 2008년에는 27만2749건으로 늘었다. 폭증의 원인은 정권교체였다. 이명박 정권은 광우병 파동 등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을 앞세운 길거리 단속을 강화했다. 국민을 겁박한 것이다. 금연장소 흡연 단속 건수는 2만838건에서 10만4736건으로 다섯 배쯤으로 늘어났다. 최근의 극심한 경제난도 윤석열 정권이 드리운 그림자였다. 정치가 잘못되었을 때의 후과는 대개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선진국이 됐다지만, 대한민국에는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단면도 적지 않다. 젊은이들의 좌절이 그렇다. 20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다. 나이 먹을수록 자살률은 빠르게 높아진다. 80대 이상이 가장 많이 자살한다. 노인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개천에서 용 나는 역전 드라마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정치를 통해서라면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청년이 희망을 찾고, 노인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도 정치의 몫이다.
윤석열처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내란을 일으키는 것도, 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도발하는 것도 모두 정치가 만들어준 힘 때문에 가능했다.
내란 극복 과정에서 돋보였던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치는 가장 약한 자들의 가장 강한 무기여야 한다고 했다. 그가 좋아했던 김근태 선생의 말이란다. 그렇다. 이게 바로 정치의 본령이다. 정치는 힘이 세다. 이 힘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이제 곧 선택의 시간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