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수사관 등이 자행한 성폭력을 증언한 피해자 자조모임이 5·18 45주년을 앞두고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나 신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5·18 민주화운동 45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우원식 국회의장과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가 광주 서구 한 식당에서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우 의장은 16일 낮 광주 서구 한 식당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자조모임 ‘열매’ 회원 12명과 오찬간담회를 했다. 열매는 5·18 당시 계엄군과 경찰 수사관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지난해 결성한 자조모임이다.
40여년 동안 성폭력 피해를 숨기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전 검사의 ‘미투’를 보고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를 꾸렸고, 2023년 12월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중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법적 조사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과거사 성폭력 사건의 종합적 피해 실상을 규명한 것은 처음이었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자조모임을 만들고 국회에서 증언대회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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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간담회에서 열매 회원들은 정부가 5·18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고도 이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해결을 촉구했다. 열매 홍보 담당을 맡고 있는 피해자 김선옥씨는 “(5·18 성폭력 사건) 16건이 통과되고 난 뒤 보상도 되고 치유도 될 줄 알았는데 발표 후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며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국회에서 증언대회까지 했는데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보상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이 열린 지난해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최경숙씨가 발언 하고 있다. 왼쪽부터 열매 모임 최미자, 김선옥, 최경숙, 김복희씨. 한수빈 기자
현재 5·18보상법 시행령은 ‘신체 장해등급과 노동력 상실률’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이 기준대로라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기 어렵다. 김씨는 “총 맞고 칼 맞은 것은 보상법이 있지만, 성폭력에 대해서는 보상법이 없기 때문에 보상을 못 해준다고 한다”며 “무엇으로도 우리 인생을 전부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저희가 마음의 치유라도 할 수 있게끔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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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회원 이남순씨는 우 의장을 향해 “여기서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고, 돌아가서도 잊어버리지 말고 우리를 꼭 기억해달라”며 “우리는 살아있는 한 앞으로 계속해서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12월3일 불법 비상계엄 사태 때 우 의장이 비상계엄 해제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최경숙씨는 “그때는 5·18처럼 계엄군이 또 일어날까봐 그게 너무 힘들었다”며 “저녁에 잠을 못 자고 기다렸는데 (우 의장이) 국회 담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흐뭇했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견뎌내고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지켜주신 열매 회원들께 정말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했던 과거의 역사, 광주의 역사는 우리 민주주의의 큰 분수령이었다”고 말했다.
▼ 남지원 기자 somnia@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