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 회원들이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고 전옥주씨 묘를 참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언니, 돌아가시기 전에 언니가 만날 그랬잖아. 미안하다고. 너 성폭행 당한 거 몰랐다고.” 장대비가 내린 지난 16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는 고 전옥주씨 비석 앞에 샛노란 꽃다발이 놓였다. 김선옥씨(67)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비석을 주름진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언니, 우리 열매가 다 같이 왔어. 언니가 못다 한 거, 내가 하고 갈 거야. 좋은 곳에 가서 거기서는 아프지 마. 나도 곧 따라갈게. 또 만나 우리.”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수사관 등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만든 자조모임 ‘열매’ 회원 11명은 이날 처음으로 민주묘지를 다 같이 참배했다.
열매 회원인 김선옥씨는 2021년 파킨슨병으로 사망한 고 전옥주씨와 ‘가장 괴로운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이다. 전옥주씨는 5·18 당시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가두방송을 하다가 잡혀가 투옥됐다. 간첩임을 인정하라며 거짓 진술을 강요받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성고문도 자행됐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김선옥씨도 가두방송을 하다 체포돼 수사관에게 강간을 당했다. 두 사람은 수감생활을 함께 하며 서로 알게 됐고,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전옥주씨와 김선옥씨는 5·18 당시 자행된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전옥주씨는 1989년 국회 청문회에서 성고문 피해를 낱낱이 증언했다. 김선옥씨는 40여년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피해사실을 2018년 언론에 공개하며 진상규명의 물꼬를 텄다.
김선옥씨가 공개 증언을 했을 때 전옥주씨는 ‘이틀이 멀다 하고’ 전화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큰 아픔을 겪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몰랐다고, 혼자 그렇게 있게 해서 미안하고 암 투병하면서도 밝혀준 것이 고맙다고 이야기했어요. 네가 성폭행당하고 평생 그렇게 힘들었던 것도 모르고 위로 한번 못 해줬다고, 자기만 위로받아서 미안하다고. 나는 그럴 때마다 ‘그만해, 미안할 게 뭐 있어’ 하고… 그러다가 돌아가셨어요.” 김선옥씨가 회상했다.
김선옥씨의 증언 후 국가에 피해를 신고한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지난해 자조모임 ‘열매’를 결성했다. 누구에게도 과거 기억을 털어놓지 못한 채 개인으로 고립되어 있던 피해자들은 함께 손을 잡고 세상에 나왔다. 이들이 용기를 낸 끝에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 등이 성폭력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국가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다같이 찾은 민주묘지에서 피해자들은 때로 탄식했고 때로 눈물을 흘렸지만 “함께라서 조금은 마음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처음 (피해 신고를 하러) 찾아갔을 때 상담 선생님께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성폭행 당사자라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진실을 말하고 죽겠다고. 그러면 민주묘지에 묻힐 수 있냐고요,” 5·18 성폭력 피해자 이미영씨(가명)는 피해를 인정받아 민주묘지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제는 소원을 이룰 거라며 웃었다.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이지만 진상규명에 이르지 못한 피해자들도 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다. 열매 회원들은 1980년 7월 고작 18살의 나이로 사망한 고 이요승씨의 묘소도 참배했다. 이요승씨는 온몸에 멍이 들고 몸에 빨간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채 발견됐고,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유족이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당사자가 사망한 상태라 진상규명을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교복 차림으로 양갈래 머리를 한 채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사진에 이들의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한 열매 회원이 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남아서 열심히 명예회복하고 진상규명하고 갈게요. 잘 계세요.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