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2일 ‘방탄복’을 입고 선대위 출정식에 참석했다. 선거운동을 할 때도 피습 위험이 있어 유권자와 거리를 두었고, 급기야 저격용 소총이 밀반입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누군가의 신변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방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
같은 날, 21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10대 공약이 발표됐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제외하곤 ‘성평등과 인권’ 공약은 사라졌고,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광장의 ‘사회 대개혁’ 요구는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종교계 반발을 이유로 ‘사회적 합의’가 되면 추진하겠다는 방침이 있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했고, 그 합의라는 과정마저 위임해 버렸다. 차라리 민주당 내부의 합의가 부족했고, 그동안 정치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솔직해 보인다. 이는 무관심을 넘어 무책임이고, 정치가 해야 할 역할마저 포기한 것과 같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의지’의 문제지만, 이 후보와 민주당이 그동안 말 바꾸기를 반복하며 사회적 합의 외에 다른 변명조차 대지 못한 것을 보면 의지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민주당의 입장이 진일보할 줄 알았다. 반공주의 기반 아래 ‘동성애 혐오, 차별금지법 반대, 안티 페미니즘’ 입장을 견지한 보수 기독교는 정치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만 말하고 있을 때 세력화됐고, 급기야 극우의 모습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서부지법 폭동과 헌법재판소를 향한 물리적 위협이 그러했지만, 유력 대선 후보는 인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그 어떤 청사진도 제시하지 않았다.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은 ‘방탄복’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극우의 재결집이 대선 과정에서 확인되고 있는 만큼 대선 이후에도 이들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민주주의 정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히 일상적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 성소수자라면, 방탄복과 같은 역할을 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지금 이 시기 매우 필요한 공약이다. 적어도 사회적 합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했다. 내란 세력을 청산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될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배제됐던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을 지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할 때 비로소 새로운 민주주의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빛의 혁명을 완성하겠다고 한다. 빛은 어둠을 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빛이 없는 사회적 그늘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비추기도 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이 광장에 함께하며 스스로 빛이 된 것처럼 광장의 빛은 더 환하게 비쳐야 하고, 사회적으로 호명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닿아야 한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