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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는 안정과 절제의 표상이어야 한다

이재명 ‘선거법’ 파기환송 판결
대법관들 상호 설득의 시간 없어
이재명에게만 차별적으로 ‘신속’
상식적으로 의심 살 일은 피해야

과거 판사 노릇 하던 시절, 내가 속해 있던 재판부의 부장판사가 인사발령을 앞두고도 여러 사건에서 당사자가 원하면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지정한 일이 있었다. 의아해서 물었다. 인사발령이 나면 바로 변론을 재개해야 할 텐데 왜 그리하시는가 하고. 대답은 이랬다. “판사는 늘 ‘똑같이’ 하는 법이다.” 어떤 판사는 판결을 내릴 피고인에게서 돈을 받아먹었다는 소문이 들려와서 분개하고 있을 때 선배 판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이럴 때 너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평소의 기준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면 안 된다. 똑같이 하라.” 부장판사 한 분은 내가 사건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이렇게 가르쳤다. “어려운 사건일수록 원칙대로 하라. 재판에서 묘수는 악수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죄 피고사건에서 유례없이 빠른 파기환송 판결이 나자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비난이 들끓는다. 개중에는 근거 없거나 도가 지나친 것도 있고 오해에 기한 것도 있다. 대법관들이 6만여쪽에 이르는 기록을 과연 다 읽었느냐며 따지고 드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파기환송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후 재상고를 할 때 대법원이 상고이유서 제출 기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상고기각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예측마저 내놓았다. 모두 합당치 않다.

로마법에는 “재판관은 대사(大事)를 취급하지 않는다(Judex non calculat magna)”라는 법언이 있다. 재판관이 국가의 중대사, 정책적 판단, 정치적 문제와 같은 거시적이거나 고도의 정치적 사안에는 되도록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찬동하지 않는다. 무슨 사건이든 판사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뿐이다. 대법원이 이번에 서울고등법원의 무죄 판단을 뒤집은 것은 정치적 편향에 따른 악의의 산물이라는 해석에도 찬성할 수 없다. 이런 유의 판결에는 판사의 사법 철학이 결론을 좌우하게 마련이다. 법령이나 논리에 명백히 어긋나지 않는 한 악의의 존재를 단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정의가 실체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절차적으로도 실현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절차적 정의란 단순히 절차에서 합법성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당사자가 수긍할 수 있도록 절차를 진행해 나가고 매듭지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미국 연방판사였던 사이먼 리프킨드가 법관 윤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을 떠올린다. “법관은 안정과 절제의 표상이다.” 이 언명은 사법부의 사건 처리방식 일반에서도 새길 만한 가치가 있다. 개정 시간에 늦을까 법정으로 달려오던 배석판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던 일이 있다. “법복을 입은 판사는 뛰지 않는다.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또한 판결은 숙고(熟考)의 결과여야 한다. 그래야 법공동체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사건의 처리를 두고 대법원이 택한 방식과 속도의 이례성은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가장 중요한 비판은 “대법관들 상호 간의 설득과 성숙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판결 자체의 소수의견이 아닐까. 덧붙이건대, 이번 판결의 보충의견이 미국 대선의 검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인용하며 ‘지연된 정의’ 운운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미 치러져 일단 결과가 나온 선거에서 당락을 적시에 확정하는 것과, 아직 치러지지 않은 선거에서 자칫 후보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판결을 그야말로 ‘적시에’ 내리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사건에서는 정의의 지연보다는 유독 이 대표에 대한 정의가 차별적으로 신속함을 걱정했어야 한다. 원칙대로 그리고 ‘똑같이’ 했어야 마땅하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대법원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는 주장은 모함이다, 우리는 그저 법대로 판결했을 뿐이다’라면서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법작용에는 ‘불공정한 외관의 피지(避止)’라는 원칙이 있지 않은가. 상식인이 보아서 의심스럽다고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리프킨드의 발언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판사는 물의(物議)나 기관(奇觀)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이 사법의 정치화를 보인 것이라는 비난에 쉽게 동조하기는 어려워도, 대법원의 정치적 상상력 부재와 사건의 콘텍스트를 읽는 능력의 미흡함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저러나, 참담하다. 그렇지 않아도 수년 전의 사법농단 사건 이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빠르게 하락하는 중이다. 자칫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신뢰 상실을 맞을 수 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다.” 발자크의 말이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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