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화인 火印](https://img.khan.co.kr/news/2025/05/18/l_2025051901000457800045971.jpg)
그리고 시곗바늘은 채찍처럼 휘었다,
그리고 시곗바늘은 재빠르게 뒤로 되튀어 피가 맺힐 때까지 시간을 채찍질했다,
그리고 당신은 차오르는 어스름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당신 말들의 밤에 열두 번 나는 당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밤이 열렸고 열린 채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눈 하나를 밤의 품에 안겨주고 다른 하나는 당신 머리칼 속에 땋아주었다
그리고 그 두 눈 사이에 도화선을 얽히게 했다, 열린 정맥을 ―
그리고 어린 번개가 헤엄쳐 다가왔다. 파울 첼란(1920~1970)
오월이 오면, 파울 첼란의 시가 떠오른다. 아우슈비츠, 검은 우유, 암호, 가스실, 유골단지 이런 단어들을 지나갈 때마다 광주의 골목 어딘가에서 소년, 소녀들이 달려와 살려달라고 등 뒤에서 소리치는 것 같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시인의 영혼은 언제나 “우울의 시계장치” 속에 누워 있었다. “시곗바늘은 채찍처럼 휘었”고, “피가 맺힐 때까지 시간을 채찍질”했다.
시인의 시간은 멀리 달아났고, 밤이 길게 이어졌다. 누군가 점점 짙어가는 어둠에 대해 자꾸만 이야기했다. 시인은 “눈 하나를 밤의 품에 안겨주고” 또 다른 하나는 “당신 머리칼 속에 땋아 주었”다. 그러고는 “그 두 눈 사이에 도화선”을 얽히게 하자, “어린 번개가 헤엄쳐” 나왔다. “어린 번개”는 우리에게 ‘악의 평범성’이라는 그 섬뜩함의 칼날을 비춰준다. 일상의 진실과 사실을 암호처럼 풀어보라는 듯하다.
매년 오월이 오면 금남로 전일빌딩의 총알 자국처럼 가슴에 찍힌 화인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결코 잠들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날들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