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구애’ 영향…미국과 관세협상 카드 중 하나로 부상
그리어 미 USTR 대표, HD현대·한화오션 대표 면담 기대감 키워
‘미국 내 건조’ 규정 유지에 투자 규모·허용 범위 등 불확실성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 해군력 강화 등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한 협력을 요청하면서 ‘조선산업 협력’이 한국 정부의 대미 교섭 카드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 2위 조선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인정받은 만큼 수주 확대 등을 기대할 수 있는 데다, 대미 조선 협력이 통상 협상의 지렛대가 될 수 있어 기대감이 크다.
다만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만큼 실익을 얻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이 자국에서 선박 건조와 부품 생산을 요구하는 데다 미국 내 인력과 기술력의 한계도 뚜렷해 수익성에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16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를 각각 만났다. 미국 관세 협상 대표가 국내 주요 조선업체 대표를 만난 것으로, 미국 측 요청으로 이뤄진 면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공동 기술 개발, 선박 건조 협력, 기술 인력 양성 등을 제시했다. 김 대표도 미국 내 조선 생산 기반 확대, 기술 이전, 공급망 재편 등을 논의했다.
한국 조선업에 대한 미국 측 관심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존 펠란 미 해군부 장관이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향후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 관계가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저마다 “미국 조선산업의 재도약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미국 조선산업 재건 의지와 노력에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미국이 한국의 조선 역량이 얼마나 되고 또 투자 의지는 얼마나 있는지를 보러 온 정도”라고 말했다. 기술 인력 양성, 기자재 공급망 확충, 건조 효율성 개선 등 미국이 원하는 방향성은 나왔지만 구체적인 협력 방식 등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는 자국 내 조선소에서만 국내 해상운송용 선박과 미군 선박 및 주요 부품을 건조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존스법·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 정부는 미국에 법률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과 투자 기반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미 조선 협력에 대한 기대와 불안은 일본에서도 나타난다. NHK·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미국에 ‘미·일 조선 황금시대’ 계획을 제안했다. 미국과 선박 수리·건조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미국의 조선업 공급망을 강화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인 북극권 항해를 위한 쇄빙선 분야 협력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한 방위성 관계자는 “미국 조선업은 이미 크게 훼손되었고 투자에 대한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 조선업이 기술적 우위에 있는 만큼 관세 협상에서 산업 협력이 중요한 교섭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통상장관회의에서 그리어 대표와 면담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세 협상에서 산업 협력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관세 협상의 최종 타결은 결국 전체(안)를 놓고 양국의 이익과 균형을 맞출지 정하는 것”이라며 “조선 분야의 산업 협력도 미국 공급망을 도울 수 있는 국가, 조선·에너지 사업을 도울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미국 측에 관세 인하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