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개막식이 열린 지난 16일 서울 중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전시기획팀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예슬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당시 시민들이 광장으로 들고나왔던 깃발·손팻말·응원봉 등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가 지난 16일부터 서울 중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작됐다. 전시를 기획한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은 18일 “광장의 경험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려는 시민들의 열망이 모여 만들어진 전시”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실장과의 일문일답.
-많은 물품들을 어떻게 기증 받았나.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들이 직접 광장을 다니며 ‘오늘의 민주주의를 기록합니다’라고 적힌 명함을 시민들에게 전했다. 약 140명의 시민과 인터뷰했다. ‘당신이 역사를 만들고 기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전시 과정에서도 시민들이 메모를 남길 수 있게 했다.”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져 전시 일정에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3월 중순이면 탄핵이 될 줄 알고 기증을 마감하려 했는데 시민분들이 ‘아직 집회 나가서 깃발을 더 흔들어야 한다’고 연락하시더라. 그래서 파면 선고 후 일주일간 기증신청을 받았더니 신청자가 2배 이상 늘었다. 최종 기증자가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처럼) 518명인 것도 역사의 필연 같다.”
-특별히 인상 깊은 전시품이 있나?
“기증품들은 단순한 시위용품이 아니다. ‘나의 일부’,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기증해 주신 것이다. 기증하러 오셔서도 한참을 어루만지시고 가는데 어떻게 하나만 꼽겠나.(웃음) 그런데도 기증해주신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시위 초반에는 기존 운동권 깃발과 달리 ‘개인화’돼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개인 깃발들의 개성과 재치 있는 문구에 이목이 쏠려서다. 그러면서도 기수들은 추운 날씨에도 한 방향으로 박자에 맞춰 움직였다. 마치 사회 대개혁을 위해 연대하는 모습 같았다. 이제는 깃발마다 자신만의 서사가 생겼다.”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기획자인 김승은 학예실장이 14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전시 2부 제목을 ‘광장은 학교였다, 서로의 교과서였다’라고 정한 이유는.
“광장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고 자신의 경험에 비춰 연대하게 됐다. 가령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분들 덕에 쌀밥을 먹는 거였지’하며 나와의 연결고리, 나의 당사자성을 배운다. 시민들이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다는 의미를 담았다.”
-느낀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청년 여성이 특히 광장에 많았다. 길어야 30년 남짓인 이들의 인생에 너무 많은 ‘사회적 참사’가 있었다. 세월호, 강남역 살인사건, 딥페이크 성범죄, 이태원 참사가 대표적이다. 청년 여성들이 용기 있게 나선 것은 우리 사회가 곪을 대로 곪았다는 방증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가 ‘기억하겠습니다’에서 ‘연대하겠습니다’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도 느꼈다. 이제 세월호 세대들은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내 문제’로 생각하고 직접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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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선 후보들이 광장의 요구를 공약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들이 냉소하게 될 수도 있지 않나?
“연대의 경험이 개인의 인생에서는 한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순간일지라도 ‘굴복하지 않아본 경험’은 인생의 큰 지지대가 된다. 우리는 각자가 이미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이미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배웠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진 않지만 더 시끄럽고 찬란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앞으로 민주주의의 동력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4개월을 회고하는 전시가 아니라 연대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