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괴롭힘으로 볼만한 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인권단체들은 “프리랜서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최근 법원 판례의 경향을 무시하고 MBC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19일 노동부는 특별감독 결과를 발표하고 “고인은 2021년 입사 이후 선배들로부터 업무상 지도·조언을 받아왔으나 단순히 지도·조언의 차원을 넘어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행위가 반복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MBC 기상캐스터가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선후배 관계’로 표현되는 명확한 서열과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문화 속에서 이러한 괴롭힘이 이어진 측면이 크다고 봤다.
다만 참고인 조사, 고인의 SNS, 노트북 포렌식 결과를 봤을 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부는 뉴스 프로그램 출연 등 MBC와 계약된 업무 외에는 소속 노동자가 통상 수행하는 행정, 당직 등 다른 업무를 하지 않았고 일부 캐스터는 외부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하거나 엔터테인먼트사에 회원 가입을 한 후 자유롭게 타 방송 출연, 개인 영리활동을 하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고 별도로 정해진 휴가 절차도 없다는 점도 근거로 봤다.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의 어머니 장연미씨가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열린 MBC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5.5.19 이준헌 기자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 엔딩크레딧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는 최근 판례의 경향을 무시하고 MBC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원은 MBC 뉴스 방송작가 소송에서 뉴스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MBC가 고용한 직원이라 판단하며 “방송사가 방송작가들의 출·퇴근 시간을 분 단위로 일일이 관리·감독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작가들로서는 방송사가 정한 방송 일정에 맞춰 출근했다가 업무를 마쳐야만 퇴근할 수 있었다. 방송사가 작가들의 근무 시간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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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요안나씨는 방송 3시간 전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등 근무 시간이 사실상 정해져 있었고, 연휴에도 캐스터들이 일하는 날을 나눠서 배분해 휴일과 근무일을 선택할 수 없었다. 파트장이 원고를 검토하며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할지 가이드라인까지 지시하고 검토하는 등 구체적인 지휘 감독을 받았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오요안나씨는 MBC의 지휘·감독하에 MBC가 지정한 근무 장소와 시간에 맞게 일을 하고 MBC가 정한 급여를 받았다”며 “노동부가 법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하은성 노무사는 “앞으로 프리랜서를 악용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만 적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며 “MBC가 제일 꺼려할 수밖에 없는 근로자성은 인정하지 않아 MBC만 책임에서 벗어났다. 프리랜서끼리 민사소송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오씨의 어머니 장연미씨는 “노동부는 MBC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이런 결정을 한 것이냐”며 “감독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절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노동부는 그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경우 괴롭힘 여부도 판단하지 않았지만 오씨의 경우 괴롭힘 여부를 판단했다. 다만 근로자가 아니라 판단했기에 과태료 부과나 형사 처벌 등 근로기준법상 처분을 내리지 못한다. MBC는 “노동부의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며 “또 관련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