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데이비드 수터가 지난 8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수터’라는 이름은 공화당과 보수 진영에는 악몽이다. 1990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사건에서 진보 진영과 의견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수터가 임명된 직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재검토할 기회가 왔다. 보수파의 기대와 달리 그는 1992년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에서 임신중지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재확인했다. 판결 이유에서 “선례 구속의 원칙은 안정된 사회가 요구하는 법치에 필요하다. 개인의 성품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정당성도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형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1973년에 숙고해 내린 대법원 판결을 20년도 되지 않아 뒤집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수터는 재직기간 내내 공화당의 기대를 벗어나는 판결을 했다. 보수 진영이 싫어하는 대학 입시의 적극적 우대조치, 소수인종의 민권을 위한 1965년 투표권법의 합헌성을 옹호했다. 대법원이 대통령 당선자를 사실상 결정했던 2000년 부시 대 고어 사건에서도 다른 보수 진영 대법관들과 달리 소수의견에 참여했다.
대법원이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던 이 판결은 수터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0년 판결로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퇴임하고 버락 오바마가 취임한 직후인 2009년 5월 사임했다. 그의 후임으로 최초의 히스패닉 출신이자 가장 진보적 성향인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임명된다.
수터의 사례는 대법관 지명 및 인준의 관행을 바꾸어 놓았고, 공화당은 철저한 보수 이념이 검증된 사람만 대법관으로 임명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진영의 배신자, 혹은 대법관이 되기 위해 신념을 숨긴 사람이 아니었다. 연방대법관을 지낸 116명 중 손꼽히는 이론가도 아니고 역사에 남는 판결문이라는 측면에서도 상위권에 기록되지 않을 인물이지만, 진영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선입견 없이 오로지 사건기록과 변론에 따라 재판을 한 대법관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는 인준 청문회에서 “대법원이든 하급심이든 법원이 하는 일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어 누군가의 삶이 바뀌게 된다. 그런 힘이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존재를 모두 동원해 올바른 판결을 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밝혔다. 수터 대법관 밑에서 재판연구원을 지낸 예일대 로스쿨 학장 헤더 거켄의 회고에 따르면, 수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발이 땅에 닿아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하는 거인 안타이오스를 인용하며 법원은 거창한 법률 이론을 말하기에 앞서 두 발을 땅에 딛고 삶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터는 자신을 극도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법원이 점점 정치 투쟁의 장이 되고 그 판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대법관 개인이 주목을 받는 유명 인사가 됐다. 대법관이 로스쿨 강연, 해외 순방, 북 콘서트에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됐고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는 경우마저 생겼다. 반면 수터는 오로지 판결로만 말하는 법관이었다.
대법관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대법관으로서는 이른 나이인 69세에 사임했고 진영을 뛰어넘은 인물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상당한 명예와 돈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향 뉴햄프셔로 돌아가 철저한 은둔을 선택했다. 퇴임 대법관의 관행에 따라 자신이 사는 지역의 연방항소법원 재판부에 종종 참여하는 정도가 대외 활동의 전부였다. 그리고 고향집이 무너질 지경이 될 정도로 쌓아둔 책 사이에 파묻혀 조용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
고위직을 마치면서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공직자에게 기대되는 것은 현직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직무수행이지 퇴직 후의 기여가 아니다. 수터처럼 완벽하게 시민 개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고위직이 필생의 목표이자 유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주어진 기간 동안 봉직하고 떠나는 자리라는 점을 이렇게 삶으로 보여준 사례가 있을까 싶다.
영어로 고인을 추모할 때 ‘Rest in peace’라는 표현을 쓰는데, 추모 대상에 따라 약간 다르게 변주되기도 한다. 2020년 타계한 긴즈버그 대법관을 향해서는 소수자를 위해 헌신했던 고인에게 경의를 바치는 뜻인 ‘Rest in power’라는 표현이 쓰였다. 수터의 부고에는 ‘Rest in prudence’라는 표현이 많이 보였다. 번역하면 신중함, 분별력, 사려 깊음. 데이비드 수터가 남긴 대법관의 뒷모습이다.

유정훈 변호사